일본선교전략
전호진 박사(고신 교단 총무, 전 고신 선교대학원 원장)
현재 일본의 선교적 상황은 교회성장학에서 말하면 아직도 복음에 대한 수용성이 낮은 나라이다. 서구선교사가 무려 2,500명을 넘으며 수많은 기독교 단체와 학교들이
있으나 전도의 실제적 열매는 적은 편이다. 물론 일본의 기독교는 수에 비하여 전술한 바와 같이 지식인들이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사회적 영향력은 어느나라의 기독교보다도 높은 편이다. 일반대학교의 교수들이 신앙을
떠나 해방신학과 종교다원주의 같은 신학을 다룰 정도이며, 수많은 기독교 문인들과 사상가들이 기도교적
사상에 기초한 글들로 일본인 사회에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가천농언은 전도자요 사회봉사자요 문필가로서 일본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사상적
영향과 전도의 열매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일본사회에 확산된 기독교적 영향력이 결코 일본교회 성장에
직접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나라에는 지금 약 2, 500명 이상의 외국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전후 일본에는 미국에서 밀려든 선교사들이 무료 4,000명을
상회한 적이 있다.
그러나 많은 선교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교의 실적은 극히 미미하였다. 니일은
전후 선교사들의 선교결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한다.
홍수같이 밀려온 선교세력들은 대부분 피차간의 협의나 계획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거의 모든 신참 선교부들은 앞서 들어온 선교부들과 마찬가지로 도시에 정착하였다. 따라서 이렇게 막대한 숫자에 이르는 일군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일본 농촌 지역의 선교사업은 아직 시작도 안된
형편에 있다. 더 나아가 기대했던 바 산 사태와 같은 개종 사태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전 후 4,000명에 달하던 선교사들은 많이 철수하였고 서양선교사들이
물러간 그 자리에 100명이 넘는 한국선교사들이 자리를 메웠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솔직히 아직도 한국인을 ‘조센징’으로 멸시하는 일본인들을 상대로 얼마나 성공을 거둘지는 평가가 이르다. 일본이 기독교에 대한 수용성이 낮은 것은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보다도 사회가 안정된 데 원인이 있다고 보겠다. 일반적으로 고등종교가 발달하지 못하고 사회와 정치 및 경제가 불안하여 사람들이 자신의 종교와 사회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할 때에 기독교나 다른 외부에서 온 종교를 환영한다. 이점에서 일본은 이단의 천국이면서 기독교
선교가 어렵다.
일본은 다른 아시아 나라와는 달리 사회적 요인, 즉 자기들의 사회에
대한 불만이나 반발이 아주적은 나라 중의 하나이다. 한 서구 사회학자의 지적대로 일본은 수수께끼의 나라이다. 수직주의 사회이면서도 평등성이 보장되는 나라이고, 권위주의적 정치형태를
유지하면서도 비도덕적 권력에 의하여 착취를 당하지 않은 백성들이다. 따라서 일본인들은 독재자에 의하여
개인의 혼이 없는 꼭두가시의 노릇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하였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정확한 분석인지도 모른다. 과거
독재권력에 의하여 억압받았다고 불평하고 권력형 부정에 의하여 사회가 병들었다고 불만하는 한국이나 중국과는 다르다.
1) 기독교의 토착화
외국인 선교사로서 일본 선교전략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독교의 토착화이다. 일본인들은
아직도 기독교를 외래종교 혹은 서양종교로 간주한다. 초기 서구 선교사들은 일본화에 힘쓴 것으로 일본인학자들이
평가한다.
1974년 첫 일본 선교대회에서 명치학원의 전학장 토미오 무토는 “태초에 선교사가 있었다. 그 선교사는 하나님과 함께 하였다. 그리고 그 선교사는 일본화하였다”고 평하였다. 전후 일본은 철수하였던 선교사들이
다시 들어오면서 일본교회와 선교사들간의 관계정립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천주교는 교구계약으로 문제를
해결하였고 NCC계는 협력관계를 가짐으로 별 문제가 없지만 일부 일본인들은 선교사를 수수께끼의 인물로
생각한다. 따라서 한국 선교사들은 한국의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도 어떻게 선교의 일본화를 시도하느냐가
큰 과제일 것이다.
한국선교사들은 결코 일본인 신자들에게 한국교회의 성장을 너무 자랑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가 될지도 모른다. 우찌무라간조는 일찍이 한국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한국의 사회적, 정치적
불안으로 인한 하나님의 보상이라는 식으로 낮게 평가하였고 또한 한국교회의 성장은 서구선교에 의한 것이라고 평하였다. 즉 주체성이 없는 선교라는 것이다.
일본에서 토착화 선교전략의 중요성은 우선 일본의 신흥종교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일본에서 불교계의 신흥종교들이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여 많은 신자를 확보한 것은 그들의 토착화 전략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동경 루터신학대학에서 교수선교사로 일한 케네스 데일은 입정교성회 성장의 비결은 바로 토착화를
잘 활용한데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기독교 선교도 더 이상 기독교가 서양종교라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접촉점 발견
헨드릭 크레머에 의하면 선교에서 가장 위대한 접촉점은 선교사 자신이다. 친절하고
정직하다는 일본사회에서 선교사가 신용을 잃을 때 선교는 불가능하다. 이점에서 선교사 자신이 접촉점이다. 따라서 일본인들을 잘 만날 수 있는 장소나 구조를 잘 파악하여야 할 것이다.
최근 일본인들이 김치를 좋아함으로 한국인들은 김치를 통하여 이웃을 사귀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다음 한국 선교사들은 서구 선교사들보다 일본어와 문화를 더 잘 알 수 있는 유리한 점이 있으나 한국인을 무시하는 악습을 가진 일본인들에게
불리한 점도 있다. 영어를 하는 서양인들에게는 ‘하이’하면서 고개를 숙이지만 영어가 약한 한국인들은 경멸한다.
우리는 이러한 불리한 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더 우수한 학문과 세련된 지성미를 가지고 일본의 언어, 종교, 문화에서 접촉점을 찾아야 한다. 일본 종교에서 접촉점을 찾을 때는 물론 조심할 요소가 있다. 이미
언급한 대로 사비엘은 불교용어를 많이 사용함으로 일본인들에게 기독교와 불교는 별 차이가 없다는 오해를 주고 말았다. 하지만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선교는 불가피하게 선교지의 종교의 교리나 용어를 잘 이애하여 기독교의 진리를 전하는
접촉점으로 삼지 않을 수 없다. 이점에서 미국인 선교사학자
Charles Corwin의 Biblical Encouter with Japanese Culture는
좋은 안내서가 된다. 그는 일본어 주요 단어를 지적 경험의 개념, 감정적
경험의 개념, 종교적 경험의 개념 등으로 구분하고 이것을 성경의 개념과 비교연구하였는데, 한자어를 접촉점으로 하지만 성경의 개념이 더 질적이고 한 수 위임을 입증하느데 노력한다. 예를들면 시간이란 한자어를 분석하면 태양이 달린다든지 혹은 시간의 지속성을 중심으로 하는 양적 개념이지만 성경의
시간개념(카이로스)은 질적이라는 것이다.
3) 기독교 공동체주의적(Christian Communalism) 접근
일본선교에서 가장 어려움 점은 일본사회 특유의 집단주의이다. 일본은
화혼양재를 통하여 가장 근대화된 사회를 이룩하였다. 근대화는 서구화를 의미하며 사회적으로 개인주의를
말한다. 그러나 일본은 가정, 촌,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만 존재하지 개인은 없다는 것은 일본인들도 인정한다.
공동체의식의 중심은 철저히 종교적이다. 따라서 기독교 선교도 일본의
종교를 능가하는 공동체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는 정신적 기초인 종교란 물론
초자연은 철저히 배제되는 자연주의이다. 여기에 대하여 기독교는 하나님 나라의 초자연적 공동체를 강조한다. 지상의 나라는 지상에만 존재하는 일시적인 것이며 국가도 물론 하나님이 세우신 신적 기관(Divine Institute)이지 신이나 신성은 아님을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기독교는 결코 개인주의는 물론 이기주의가 아니라 사랑과 자발에 의한 초자연적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것을 역설해야한다. 이것을 행동으로 증명하기 위하여는 부활절이나 성탄절에 기독교회가 주최하여 지역주민들을 초대하는 행사를 제안한다.
송단은 이러한 아이디어를 Community Church로 정의한다. 즉 이것은 ‘실리적 방책론으로서 Community Church가
아니라 일본주의라는 세계관을 확실하게 능가하는 기독교 공동체론(교회론)으로서의 Community Church’이다. 다시말하면 공동체 의식이 강한 일본에서는
신자들은 하나님의 가족(Family Dei)임을 강조하는 것이 대안이다.
4) 조상제도에 대한 선교전략
일본에서 기독교 선교의 장애 중 하나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조상제사이다. 그러나
일본의 조상제사는 어떤 점에서는 한국보다도 더 기독교 선교에 장애가 된다. 한국에서 조상제사는 과거에 8촌간의 사람들은 한 형제라는 가족적 아이덴티티를 확인시켜주는 농경문화의 전통이었으나 현재는 형식화되어 가고
있다. 일본도 동일한 전통에서 조상제사가 유래되었으나 한국과는 달리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의미가 내재되어 더 진지하게 된다는 점에서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일본사회는 가족과 조상제사는 불가분의관계인 것으로 여기는데 이는 죽은 조상과 산 자손을
하나로 여기기 때문이다. 즉 산자는 산영혼이고 죽은 조상은 사영인데, 사영(사영)은
신으로 승격된다고 본다. 여기에서 사영(사영)은 자손들이 제사의식을 통하여 단계적으로 신이 되기 때문에 조상제사는 절대화된다. 죽은자의 영혼은 사영(사영) à 신불(신불) à ホトゲ(불) à 선조(선조) à 신이 되는데 불에서 신이 되는 데는 무려 33년에서 50년이 걸리며 여기에는 자손들의 제사의식이 요구된다. 1983년 NHK가 실시한 일본인의 종교의식 조사는 가장 권위 있는
조사로 널리 인용되는데 통계에 의하면 일본인들은 신앙을 가졌다고 말하는 자들은 불과 33%에 불과하나
응답자의 53%가 집에 신책(신책)를, 선단(선단)을 모신다고 하며, 초지(초지, 혹은 초삼리로서 년초에 신사나 절을 찾아 참배하는 것)에 참여하는
자가 81%이며 봄이나 여름에 성묘하는(익이나 피단의 초삼리)자가 89%가 된다. 이것은
일본에서 조상제사가 얼마나 뿌리 깊은가를 잘 보여준다.
일본에서 조상제사는 막부시대 때에 한 때 중단되었다가 대동아전쟁 때에 정략상 부활되었는데 그것은 천황숭배와 맥을
같이한다. 조상제사는 곧 천황숭배와 연결되는 것은 천황의 조상은 곧 일본인의 조상이라는 정치적 등식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에서 조상제사는 유교와 샤머니즘의 혼합이지만 일본은 유교, 샤머니즘, 불교, 신도의 혼합으로 복잡한 양상을 띈다. 일본교회는 한국교회와는 달리 전통문화와 단절이 약하여 조상제사를 지내는 신자들이 많다고 한다. 물론 한국의 신자들 중에도 제사 지내는 자들이 있지만 일본인 신자들은 더 타협적이다. 조상제사는 죽은 자에 대한 보은행위이기 때문에 단순한 종교의식이 아니라 일종의 윤리행위의 척도가 된다. 조상제사는 당연히 아들을 중시하기 때문에 아들이 없을 경우 양자를 입양한다.
따라서 일본선교에서 조상제사는 심각한 문제이다. 조상제사에 대한 일본교회의 입장은 주로 4가지로 요약된다. 1) 순응설(accommodation),
2) 적응설(adjustment), 3) 역설적 입장(paradoxical
encount), 4) 절대거부(rejection)이다.
1) 은
중국에서 마태오 리치가 행한 것인데, 일본에서도 천주교인들과 일부 개신교 진보주의자들의 견해이거니와
예수어령교회교단은 죽은 자를 위하여 세례를 베풀기도 함으로 조상제사와 기독교의 연속성을 주장한다.
2) 는
풀러의 맥가브란교수의 사상으로 그는 일본선교는 절대로 가족 밖의 신자가 아니라 가족안의 신자될 것을 역설하면서 불단을 모시는 일본가정의 의식에
대한 대안으로 조상들의 명패를 불단 앞에 두는 대신 문앞에 걸어놓으며 조상의 역사를 30가지로 요약하여
매일 가정예배시에 성경읽기 전에 읽게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하였다.
그의 이 아이디어는 마테오 리치가 중국에서 기독교적 종방(종방)을 실시한 것과 하와이에서 일본인 교회가 조상들의 명패를 교회당 전면벽에 걸어놓고 불신자들에게 “우리 신자들도저렇게 조상들을 기억하고 모신다”고 자랑하는데서 착안한 것이다. 이렇게
가정의례에서 토착화를 하면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개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마테오 리치의 조상제사와
기독교적 지방에 대하여 교황청은 후일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참작하고 보수성향의 한국 선교사들이 이것을 제안하는데는 신중성이 요망된다. 또한 맥가브란교수는 문화를 중립으로 보는 것이 그의 약점이다.
3) 의
견해는 일본에서 일한 서구 선교사가 제안한 것으로 조상제사의 문제점을 경계하면서도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Jan-Martin Berentsen박사는 일본에서 조상제사의 종교적, 사회적, 윤리적 측면을 중시하고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대결을 통한 순응(accommodation through confrontation)과 순응을 통한 대결(confrontation through accommodation)을 제안한다.
그의 사상은 좀 애매한 면이 있는데 결론은 조상제사를 무조건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거부하면서도 순응할 것은 순응하자는 내용이다.
4) 보수적
견해로서, 조상제사는 일고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 전적으로 거부해야한다는 태도이다. 그러나 성경적으로나 신학적으로 문제가 없는 범위에서 대안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교회묘지의 제안이다. 복음주의 목회자인 토성(토성)목사는
만약 바울이 일본에 왔다면 조상제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고 가상하면서 절대로 바울은 조상제사를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성경을 기초로 결론 짓는다. 그러면서도 그가 목회하는 사일시교회는 교회묘지를 확보하고 신자가족 중에 불신자도 교회묘지에 안장함으로 전도의
기회로 삼는다는 것이다.
호리꼬시에 대한 대안에서 좀 더 적극적인 것이 있다면 한국교회의 신자들 중에서 하는 추도예배와 산 조상들을 잘
공양하는 것이다. 현재 일본에서 노인들의 문제가 심각하거니와 노부모를 모시는 일본인들은 불과 23%에 불과한데 이것은 부모를 모시지 않는다는 서구국가에도 못 미친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은 부모를 직접 모시는 사람들이 65%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현재 일본사회의 모순은 죽은 조상은 종교적 차원에서 모시지만 산 조상은 도외시 함으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야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주간지는 이 문제를 적나라하게 다루었다.
물론 한국도 동일한 우를 범한다. 이러한 상화에서 한 서양 선교사의 선교적 접근은 교훈이
된다. 이 선교사는 한 일본 청년이 예수를 믿기로 결심할 때에 청년의 결단을 우선 유보시키고 그의 가정을
방문하여 예의를 갖추고 인사한 후에 부모를 먼저 설득하였다. 부고는 부모를 중시하고 예절을 갖춘 선교사의
태도에 감화되고 온 가족이 개종하였다고 한다.
선교사는 성경을 근거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강조하면서 전술한 바와 같이 신자는 하나님의 한 가족임을 역설하고 조상제사는 성경은 분명히
정죄한다는 것은 말하여야 할 것이다. 일본의 한 학자는 조상제사에 대한 연구에서 조상제사는 유목민이
아닌 논경문화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그러나 구약의 이스라엘에서 조상제사가 나타나며 언약의 하나님은 조상제사를
절대 거부한다. 구약에서 조상제사와 관련되는 풍속과 이에 대한 정죄는 창 23:19, 25:9, 35:19, 대하 16:14, 겔 34:7~9, 삼상 31:13, 삼상 28:7에서 분명히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