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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1-17 12:06
돈의 노예가 되지 말고 돈의 청지기가 되라
 글쓴이 : 러브재팬
조회 : 7,746  
 돈의 노예가 되지 말고 돈의 청지기가 되라

글; 드림빌더 김승태 형제의 글 

“부자되셔요!”

몇 년 전에 이런 말을 담은 CF가 유행했었다. 요즘도 경기가 어려우니까 재테크에 대한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언론에서도 기획특집으로 종종 다루는 것을 본다. 나도 출판하는 입장에서 이와 관련된 책을 여러 가지 출판도 하기도 했는데, 교수나 컨설턴트들이 쓴 부자 되는 법에 대한 책보다는 그의 전력이 어떻든 돈을 번 사람들이 쓴 책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매일 글을 쓰다 1주일이나 글쓰기를 멈춘 것은 돈의 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립하기 위해서였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책을 써서 대우그룹의 창업자 김우중 씨의 책을 지금도 읽는 사람이 있을까? 그가 이제는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해서 과거에 그가 했던 말들이 모두 헛된 말뿐이었을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기업은 평균 수명 30년이 넘지 못하는 광야에서 생존경쟁을 벌릴 뿐이다. 도산한 기업은 조금 운이 없어서 빨리 도산했고, 지금 인공호흡기를 낀 것처럼 위태한 기업은 생존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고, 지금 탄탄하게 잘 나가는 기업은 내려가는 일만 남았을 뿐이다. 나는 기업들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당연한 말을 할 뿐이다.

나 역시 그러한 기업생명의 주기의 몸살을 앓고 있다. 예영도 한때 쭉쭉 잘 나갈 때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벼랑 끝에서 생존을 향한 곡예를 부리면서 나는 수없이 자신의 모습을 보며 썩은 웃음을 지어왔다.

‘아! 나도 실패할 수 있구나. 나도 이제 끝이 아닐까? 하나님께서 예영커뮤니케이션의 기업으로서의 수명을 여기까지 인도하시고 닫으시나? 나도 이제 별 수 없는 사람인가?’

내가 내린 결론은 그러한 상황에 빠져 있으면서 내가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책을 만들어서 사람을 키우는 것을 보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내가 예영커뮤니케이션이라는 출판사를 경영하는 것은 돈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법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내세웠지만 그 허울 좋은 독백이 나에게 안겨준 것은 사회적인 존경심이 아니라 신용불량이라는 사회범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고백을 하면서 현실과 싸우는 것은 나로 인해 더럽혀진 하나님의 형상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이다.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못 박았기 때문에 내가 참회하고 다시 일어서서 무너진 신용을 회복시킴으로써 이 시대의 기독교는 살아 있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증거 하기 위함이다.

이제까지 나는 돈을 목적으로 두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돈을 현실적인 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정복하고 다스려야 한다.

나의 목표는 단순하다. 첫째는 신용을 회복하기 위해 갚아야 할 돈을 벌어야 한다.

“내가 그 친구를 믿었었는데, 그 친구도 별 수 없군.”

이러게 독백을 하면서 나에게 돈을 받기를 포기한 사람들도 찾아서 모두 갚아 버릴 생각이다.

둘째는 사람을 키우고 좋은 일들을 도우려면 돈이 필요하다. 현대 사회에서 돈은 목표를 이루는 데 꼭 필요한 수단이다. 그러므로 전 세계적으로 선한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자면 선한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탐욕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선한 일들을 지키고 활발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워렌 버핏과 빌 게이츠가 아프리카의 에이즈 퇴치를 위해 재정으로 크게 기여한 것처럼 누군가는 그런 일을 해야 한다. 나와 당신도 그런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번 글은 좀 길다. 성경에서 말하는 돈을 다스리는 법을 다루기 때문이다.

그보다 먼저 돈과 재물을 멋있게 쓰는 아름다운 부자가문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갑부가 많았지만 서민들로부터 존경받는 갑부는 많지 않았다. 지금 존재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재벌들 중에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기업이 얼마나 될까? 나는 경주 최부자집에 대한 글들을 읽으며 한국에 이런 사람들이 살았었고, 그들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 생각을 했다. 그들은 당쟁으로 늘 나라가 흔들흔들했던 시대를 살아오면서 양반사회뿐만 아니라 서민층, 더 나아가 일제시대에는 한국을 지배했던 일본사람들로부터도 존경을 받았다. 그들은 기독교를 알지 못했지만 막석꾼으로서 자신들의 소득의 10%를 빈민구제를 위해 사용하였다. 십일조 개념을 그들의 삶속에 구현하고 살았던 것은 놀라운 일이다.

최부자집은 신라시대의 대학자 최치원의 후손으로서 조선시대에 최언경(崔彦璥, 1743~ 1804)이 경주 교촌에 큰 집을 짓고 둥지를 틀면서 그 가문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는 후손들에게 훈육 육연(六然)과 가거십훈(家居十訓)으로 가진 자의 덕을 가르쳤다. 그 결과 1600년대로부터 1900년대까지 300년에 걸쳐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만석꾼의 부와 복을 누렸다. 그들이 가정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계승시켰는지 살펴보자.

훈육 육연

자처초연(自處超然, 혼자 있을 때는 초연하라.)

대인애연(對人靄然, 사람을 만날 때 평화로운 마음으로 만나라)

무사징연(無事澄然, 큰 일이 없을 때는 물이 맑듯 고요하고 투명하게 하라.)

유사감연(有事敢然, 결정을 해야 할 때는 과감하게 실행하라.)

득의담연(得意淡然, 뜻을 얻었어도 담담하게 처신하라.)

실의태연(失意泰然, 뜻을 잃었어도 태연하게 처신하라.)

가거십훈

첫째, 인륜을 밝혀라.(明人倫)

둘째, 어버이 섬김에 효도를 다하라.(事親孝)

셋째, 임금을 사랑함에 충성을 다하라.(愛君忠)

넷째, 가정을 잘 다스려라.(宣室家)

다섯째, 형제 사이에는 우애로 대하라.(友兄第)

여섯째, 친구 사이에는 신의로 대하라.(信朋友)

일곱째, 여색을 멀리하라.(遠女色)

여덟째, 술 취함을 경계하라.(戒醉酒)

아홉째, 농업과 잠업에 힘써라.(課農森)

열째, 경학을 익혀라.(講經學)

6대 가훈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라.”

진사는 조선시대 양반사회에서 가장 낮은 벼슬로 단순명예직에 속한다. 최씨 가문은 벼슬이 높으면 당쟁에 휘말려 화를 당할 수 있고, 한 번 당쟁에 휘말려 역적으로 몰리면 남자는 사약을 받거나 유배를 당하고, 여자는 남의 종으로 되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싹 엎드려 살면서 넉넉한 삶을 영위했다. 우리 사회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재벌들이 정치 스캔들의 희생양이 되는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지혜롭게 사회적인 처신을 하며 살았는지를 깨닫게 된다.

“재산은 만 석 이상 모으지 말라.”

최씨 가문은 필요 이상의 재물을 모으지 않으려고 힘을 썼다. 재물이 모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많이 늘어나는 원리를 잘 알고 있던 그들은 자신들의 목표인 만석을 넘기지 않기 위해 풍년이 들면 당시 7-8할을 내야 했던 소작료를 5할대로까지 오히려 낮추어 주었다. 소작료를 줄여주자 농부들이 서로 최부자집의 소작을 하려고 했다. 최부자집이 잘 되어야 소작농 자신들도 좋아진다는 상생(相生)의 도가 농부들에게 넓게 퍼진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정변이나 재난 속에서도 주민들이 나서서 먼저 최부자집을 지켜주었다.

“과객을 후히 대접하라.”

최부자집은 1년에 3천석을 자신들을 위해, 3천석은 과객을 위해, 3천석은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썼다. 당시에는 여관이나 주막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양반집에서 길을 가는 과객을 재워 주곤 했다. 최부자집은 과객 접대에 아주 후덕했는데 접대에도 일정한 원칙이 있었다. 과객 중에서 상객(上客)에게는 당시 경상도의 특산물이었던 청어를 말린 과메기를, 중객(中客)에게는 과메기 반 마리를, 하객(下客)에게는 1/4마리를 주었다. 과객이 많을 때는 100명이 넘었다고 한다. 100명까지는 큰 사랑채와 작은 사랑채에서 재워 주었으나 그 수가 넘치면 인근의 노비들의 집에서 잠자리를 제공했다. 그 경우에는 과객에게 쌀과 과메기 한 마리를 주어 보내고, 노비들은 그것으로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고 잠자리를 제공해 주었다. 그 대신에 과객을 접대하는 노비들은 소작료를 면제 받았다. 그리고 밤을 새고 가는 과객들은 그냥 보내지 않고 과메기 두 마리와 하루 분의 양식, 그리고 노자를 주어 보냈다. 옷이 더러운 과객에게는 새 옷을 입혀 보냈다고 한다.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말라.”

요즘과 같이 경기가 나빠지면 대기업들은 자신들의 현금 보유능력을 이용하여 어려움에 처함 알짜배기 중소기업들을 M&A를 한다.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정글시대이다. 그러나 최부자집은 흉년 때 먹을 것이 없어서 남들이 싸게 내놓은 논을 사서 그들을 원통하게 하는 일을 피했다. 차라리 그들에게 무상으로 양식을 나누어주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최씨 가문 며느리들은 시집 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조선시대에는 집안 살림과 창고관리를 안방마님이 맡았었다. 최씨 가문은 과객의 대접에는 후했지만 집안 식구들에게는 근검절약정신을 철저히 가르쳤다. 며느리들은 삼베옷을 하도 많이 기어입어서 누덕누덕해질 정도였고, 치마를 빨기 위해 옷을 불리면 기운천이 불어나 서말치솥이 가득 찼다고 한다. 더구나 보릿고개 때는 집안 식구들도 쌀밥을 먹지 못하도록 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민중이 최부자집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경주 교촌에서 사방 백리는 동쪽으로는 경주 동해안 일대이고, 서쪽로는 영천까지이고, 남쪽으로는 울산, 북쪽으로는 포항까지이다. 그들은 주변에서 굶는 자가 있는데 부자집의 곡간이 가득한 것은 부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작으로 벌어들인 쌀 가운데 1천석을 빈민구제로 사용하도록 하여 흉년에는 항상 양식을 풀곤 했다.

최부자집은 일제시대를 거치고 광복 후에 그 명맥을 맺게 된다. 마지막 최부자라 불리는 최준은 일제시대에 항일 대동청년당을 조직한 백산(白山) 안희제(安熙濟)와 백산상회(白山商會)를 설립하여 상해임시정부의 김구선생에게 독립자금을 비밀리에 제공하다가 결국 부도를 냈다. 이로 인해 당시에 최부자집의 재산은 은행에 모두 압류되고 알았다. 그러나 최준을 존경했던 식산은행의 총재 아리가(有賀光豊)가 최부자집의 부채를 탕감하여 주어 재산의 일부를 지킬 수 있었다. 그는 이 일로 일본군경으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해방 후 그들은 자신의 남은 재산을 인재 양성에 뜻을 두고 지금의 영남대학의 전신인 대구대학과 계림학숙((鷄林學塾)에 모두 헌납했다. 그러면서 최부자집 가문의 역사는 끝났다.

예전에는 청빈론(淸貧論)이 삶의 중요한 덕목으로 꼽혔지만 이 시대는 청부론(淸富論)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경주 최부자집은 동서고금(東西古今)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지도자의 모습이었다. 다른 나라의 멋있는 부자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최부자 가문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부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하는 멋진 삶의 모범을 보여 주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많은 부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부(富)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정립이 선행된 뒤에 자신을 드림을 통해 얻게 됨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재산이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데에는 걸림돌로 여기셨다. 예수님께 영생의 길을 묻는 부자 청년이 찾아와서 질문을 했다.

“선생님! 제가 어떤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왜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분은 오직 한 분이시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가르침을 지켜라.”

“어느 가르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증언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제가 지켰습니다. 그래도 아직 부족한 것이 있습니까?”

“네가 완전해지려면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줘라. 그러면 하늘의 보화가 네게 있을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그 청년은 가진 재산이 많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수심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돌아섰다. 그 청년을 보내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부자는 천국에 가기가 어렵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마 19:24)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씀에 나도 공감한다. 나도 살아오면서 돈이 엄청 많은 돼지 같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음을 깨닫곤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죄를 못 지을 뿐이지 그들의 손에 돈이 쥐어지기만 하면 타락할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참 좋은 예화가 있다. 공산주의 치하에서 사역했던 어떤 목사가 말했다.

“나의 경험으로 볼 때, 박해의 시험을 통과한 그리스도인 95%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공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면 95%가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진 자는 악하고 가난한 자는 선하다는 그릇된 선입관을 깨야 한다. 가진 자도 선할 수 있고, 가난한 자도 선할 수 있으며, 가진 자도 악할 수 있고, 가난한 자도 악할 수 있다. 그 심판은 하나님의 영역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르게 섬기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로 받고 또 영생을 상속받으리라.”(마 19:29)

그러므로 자신의 성공과 물질의 축복을 접고 하나님의 종의 길을 택한 목회자, 선교사 등의 사역자들의 길은 위대한 것이다. 믿음 안에서는 그들은 진정한 성공의 길을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를 따라 물질적인 축복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산업 체제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경주 최부자집이 훈육 육연(六然)과 가거십훈(家居十訓), 가훈 등을 통해 훈육을 받아 물질적인 복락을 누렸던 것처럼, 성경의 가르침 속에는 돈을 벌 수 있는 가르침들이 많이 있다. 성경의 가르침은 그 이상이다.

여기에서는 성경이 가르치는 돈 다스리는 일곱 가지 원리를 제시하고자 한다. 좀더 성경의 가르침에 근접하기 위해 나의 주관적인 생각을 자제하였음을 밝힌다.

1. 소득이 생기면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쁘게 드려라.

사업자나 직장인들은 경제활동을 하면 반드시 세금을 납부하도록 되어 있다. 현대 사회에서 세금을 내지 않고 할 수 있는 사업활동은 없다. 최근 들어 나는 사업부진으로 인해 세금 연체를 종종 하곤 했는데 반드시 독촉장이 날아온다. 그 독촉장에는 이런 말이 있다.

“귀하의 세금 납부 지연으로 국가 경제운영에 막대한 차질을 주고 있습니다. 속히 납부해 주시기 바랍니다.”

세금의 원리 역시 고대 사회로 거슬러 올라가면 십일조의 원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는다. 세금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의무라면, 십일조의 원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면서 드리는 감사의 제물이라는 것이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성경은 자신을 드려 헌신하는 자들과 하나님께 감사한 자들의 성공 역사를 많이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의 모든 것을 인간이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축복의 선물로 주셨다. 인간의 배신으로 그 축복을 하나님께서 거두셨으나 하나님은 아직도 소득의 첫 열매를 바치고 진심으로 감사하는 자를 축복하신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다.”(창 4:4)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잠 3:9)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려 했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축복하셨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 22:17-18)

인간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창조되었다. 인간의 존재의 가장 기초적인 의미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면 하나님의 가르침과 규율에 순종해야 한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신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다. 선한 사람들의 곁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현대사회에서는 사람들을 몰려들게 하는 집인력(네트워크)이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먼저 하나님 앞에 바로서서 범사에 감사함으로 물질적인 축복을 누려라. 물질의 축복이 막혀 있다면 먼저 하나님 앞에서 회개와 기도를 할 때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2. 돈은 자신을 다룰 줄 아는 청지기에게 충성을 다한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라.”(마 7:32)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

돈은 아무에게나 함부로 다가가지 않는다. 돈은 자기를 존중해 주는 사람을 존중해 준다. 그리고 돈은 자신을 정직하게 대하는 사람에게는 정직하게 대하고, 자신을 믿음직하게 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용이라는 선물을 준다. 성경의 달란트의 비유를 보자. 다섯 달란트를 받았던 자가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주인에게 말했다.

“주인님, 제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십시오. 제가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나이다.”“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겠다. 네가 나의 즐거움에 함께 참여하라.”

“나는 길을 걸으면 길바닥에 돈이 깔려 있는 것이 보입니다.”

한때 잘나가던 김우중 씨는 그런 말을 했다. 돈의 원리를 터득한 사람들에게는 돈이 지천에 널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돈은 이익을 남길 줄 아는 자에게 더 많은 이익을 남겨 준다. 적정한 이윤을 남기고 돈이 나가는 구멍을 막으면 돈이 모아지고, 작은 신용을 쌓으면 큰 신용을 얻을 수 있다. 부자가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돈이 들어오는 문을 열어놓고 나가는 문을 잠그면 된다. 돈을 모으는 데는 슈퍼마켓이나 출판, 잡지처럼 박리다매식의 방법이 있고, 디자인, 컨설팅, 부동산 투자, 주식투자 등 고부가가치식 이윤추구가 있다. 사업의 형태와 각자의 능력에 따라 다르다. 문제는 시대의 변화가 돈을 버는 방식을 다르게 만든다는 점이다. 우리는 돈을 버는 방법에 민감해야 한다. 편법을 쓰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벌어야 한다. 또한 다른 사람과 차별화하여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 따라서 너무 남보다 빠르거나 뒤늦어 경쟁이 치열하면 이익을 남기기가 어렵다.

또한 마태복음의 달란트 비유에서 원금만 보존하는 것을 악하고 게으르다고 비난한다. 그러므로 급격한 경영 환경의 변화에 둔감하여 이익을 남길 줄 모르는 자나 기업은 신용을 잃게 되고 신용을 잃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마저 잃게 된다. 그렇게 되면 마지막으로 손에 쥔 것마저 빼앗기게 된다. 이런 사람들에게 대해 성경은 서슬이 퍼런 경고를 한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나는 내 원금과 이자를 받기를 원한다.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 25:26-29)

3. 돈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그러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아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 7:7-8)

돈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구하는 자에게 귀를 기울이지만 구하는 자에게 무조건 가지는 않는다. 자신을 품을 만한 도량과 그릇이 되고 자신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의 품에 안긴다. 재테크의 원리를 알아야 한다. 때때로 경영학 교수들나 유명 컨설팅 회사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던 컨설턴트들이 직접 사업에 뛰어들어 도산하는 경우를 본다. 원리만 깨닫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축적된 훈련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되지 않는다. 사업의 현장에서는 변수가 많다. 범사에 때가 있다. 그 때는 우리가 정할 수 없다. 지금과 같이 아무리 사업의 시스템을 잘 갖추어도 국제적인 경기하락을 견디지 못하고 도산하는 첨단 유망기업들이 수두룩한 것이 현실이 아닌가? 날씨나 천재지변도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경영의 변수이다. 농부들이 1년 동안 정성을 다해 지은 농산물들이 풍년이 되어 원가도 나오지 않아 갈아엎기도 하고, 한국 안에서 적정한 수량을 수확했는데, 중국이 풍작이 되어 제값을 못받기도 하고, 냉해가 와서 수확도 하기 전에 모두 상하여 망치고, 벼농사를 잘 지었는데 갑자기 비가 내려 모두 물에 잠기게 만들고... 우리는 암초가 지천에 깔린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그러므로 실패는 당연한 것이다. 실패한 사람은 다시 성공을 준비해야 하고, 성공한 사람은 다시 실패에 대비해야 한다. 돈이 우리에게 고여들게 하려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병(兵)이 자신을 알아주는 장군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처럼 돈도 자기를 알아주는 성실한 자들에게 찾아온다.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함께 가져갔더니 ...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1-13)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44)

4. 돈은 남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찾아온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시면서 돈을 비축하지도 않으셨고, 남기지도 않으셨다. 그렇다고 무전취식을 하지도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시기 위해 제자들을 부르시고 훈련을 시키셨으며, 따로 칠십 명을 부르셔서 가르치신 후에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짝을 지어보내셨다.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거기에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그 집에서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눅 10:3-7)

돈을 쫓아가지 말고 돈이 찾아오게 하라. 돈은 벌고 이익을 남기는데 정통한 자들에게만 다가가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들을 더 아름답고 의미 있게 베풀고 쓸 줄 아는 사람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교회나 선교사역을 비롯하여 NGO/NPO에서 국제적인 공익을 위해 일하는 현장에 국가나 기업, 교회들이 지원을 하는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성공한 기업 경영인들을 보면 경영 1세대들은 경영의 기초를 공부해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현실과 싸우며 창의적으로 경영하여 성공한 경우가 많다. 오히려 그들이 성공한 것은 어떤 틀에 맞게 공부하지 않은 것이 다변화된 경영의 변수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겸비하도록 해 주지 않았나 생각이 된다.

그런데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뭔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기여를 하여 자신의 삶의 발자취를 남기려는 속성들이 있다. 따라서 그런 사람들이 결국 학교나 박물관 등에 많은 돈을 제공하게 된다. 교회 안에서는 교회를 건축하거나 선교센터를 짓는데 몫돈을 헌금으로 드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돈들이 결국 바르고 의미 있는 일에 자신의 몸과 삶을 드린 사람들의 길을 열어주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낌없이 주는 자에게 하나님은 다시 아낌없이 그의 길을 열어주신다.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 19:17)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더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5. 돈은 정직하지 않은 자를 철저히 미워한다.

돈은 투명한 것을 좋아한다. 투명하지 않은 주인은 버린다. 우리가 돈을 쓰는 것을 사람들은 몰라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세상을 속일 수는 있어도 하나님을 속일 수 없다. 근본적으로 돈의 문제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 속에서 풀어야 한다.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에게로다.”(행 5:1-4)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하나님의 종인 베드로를 속이고,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여 저주를 받아 죽은 것처럼 하나님께서 타락한 사람들에게 무한한 사랑의 관용만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돈은 자기를 이용하여 악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악한 일로 되돌려 주고, 정직하게 대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신용사회를 살아갈 최소한의 신분 보장도 해주지 않는다. 돈은 말이 없다. 그러나 심판자처럼 당신의 목에 칼을 들이댈 수도 있다. 하나님의 눈 밖에 나는 사람을 감히 돈이 가까이 가겠는가? 병이 들든지, 화를 당하든지, 실패를 하든지 그는 결국 빈털터리가 되고야 말 것이다. 그 결과는 그 후손의 3대를 보면 알게 될 것이다.

6. 돈인 인격을 드러낸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라는 신파극이 있지만 돈 때문에 인생을 망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가? 돈은 냉정하게 보면 물질교환의 수단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성경에서까지 돈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는가?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정립의 과정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 사이에 돈을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물질의 축복을 주시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이고, 물질의 축복을 거두시면 하나님께서 축복을 거두시는 것인가? 서울 강남에 가서 보라. 수백억대의 건물을 갖고 있으면서도 밥을 사먹을 돈이 없어서 여러 모임을 돌아다니면서 빈대 붙어서 밥을 얻어먹는 거지들이 얼마나 많은가? 물질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오직 돈의 소유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은 돈의 노예가 된다. 단순한 수전노는 하나님 나라와 관계가 없다.

“부하려고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9-10)

나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난 자녀들이 교만하고 약자들을 경멸하는 행동을 종종 본다. 남을 존중할 줄 모르면서 자행되는 그러한 방식의 안하무인격적 자녀 인격교육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축복에 대한 저주로 돌아올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상담하면서 부유한 부모들은 자녀들의 교육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속성을 보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자녀교육은 돈으로는 절대로 할 수 없다. 돈으로 명문학교의 졸업장까지는 얻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줄 수 있고, 능력 있는 참모를 붙여줄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의 인생의 성공의 문을 열어줄 수는 없다. 자녀에게는 자녀 스스로 일어나서 책임지고 살아야 할 그의 몫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가늠해야 하는 인생의 성공의 문제는 돈을 많이 갖고 적게 갖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느니라.”(눅 12:34)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돈을 버는 방법도 깨끗해야 하지만 돈을 쓰는 방법에서 그의 인격이 드러난다. 앞에서 경주 최부자집의 이야기를 제시한 것은 그들은 부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실천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독실업인임을 자처하는 우리들을 한없이 부끄럽게 만든다.

7. 어느 누구도 돈을 영원히 소유할 수 없다.

록펠러가 죽기 전까지 그는 세계 최고의 부자였다. 드디어 록펠러가 죽자 어떤 사람이 회계사에게 물었다.

“록펠러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재산을 남기고 죽었습니까?”

“그가 가졌던 모든 것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맞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돈을 우리가 잠시 맡을 수는 있으나 영원히 소유할 수는 없다. 돈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사탄의 시험으로 모든 재산과 사랑하는 가족들을 모두 잃었던 욥은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이실지니라.”(욥 1:21)

성경에는 인생은 잠시 피었다 지는 찰라에 불과하다는 것을 수없이 강조한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20-21)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치겠느냐?”(마 16:26)

돈과 재물은 오늘 비록 내가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우리의 삶의 실체 속에서는 잠시 피었다 지는 무지개나 신기루에 불과하다. 오직 감사함만이 그 축복을 이어갈 수 있다. 당신도 죽고 나도 죽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물질적인 축복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일에 사용하도록 하라. 그의 삶은 하나님께서 책임을 져 주실 것이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벧전 1:24-25)

드림빌러 김승태 형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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