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게시판 |
|
|
|
작성일 : 08-12-02 21:29
|
글쓴이 :
러브재팬
 조회 : 5,688
|
| 존엄사 첫 판결 어떻게 볼 것인가? |
|
| 정부는 사람들이 존엄사 선택을 하지 않도록 제도적인 지원을해야 한다 |
| |
|
|
|
|
지난 11월 28일 서울서부지법(재판장 김천수 부장판사)이 내린 존엄사를 인정하는 첫 판결을 보면서 인간의 생명에 대한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많은 중환자를 방문해서 쾌유를 위해 기도하고, 그 가족들을 격려하는 목회자로서 이 문제는 여러 면에서 깊은 고민으로 다가온다. 성경이 분명하게 보여주는 생명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죽음의 문턱에 서서 고통당하고 있는 환자들과 그 가족이 안고 있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 과중한 경제적 부담 중 어느 것 하나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환자들이나 가족들을 자주 만나는 입장에서 존엄사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마음속에 일어나는 안타까움과 측은함을 지울 수가 없다.
인간의 존엄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의 논리는“의학적인 치료에 최선을 다했지만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인공호흡기 같은 생명 연장조치를 중단하는 행위”를 요구할 권리가 있으며, 이번 재판부 역시 헌법에 환자 스스로 생명유지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한다.
소생 가능성도 없으면서 고통 받는 환자들을 해방시켜 주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인간 존엄이라고 말한다. 특히 존엄사와 소극적 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안락사와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존엄사는 안락사의 소극적인 형태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안락사는 말기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약물을 투입해 생명을 끊거나 회복 가능성이 있는데도 고통을 줄이기 위해 생명을 단축하는 적극적 안락사와 사망이 임박한 환자에 대해 생명유지에 필요한 처치를 하지 않거나 생명 연장 장치를 제거하는 소극적 안락사로 나눈다. 적극적 안락사는 환자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생명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라면, 소극적 안락사는 죽도록 내버려 두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소극적 안락사로써 존엄사는 생명에 대한 인간의 임의적인 행위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기에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려고 한다.
첫째, 성경은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목적이 어떠하든지 인간의 생명을 인간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인간에게 생명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 그러므로 존엄사는 생명을 주신 분도 여호와시고 취하시는 분도 여호와이심(욥1:21)을 망각한 행위이다.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히9:27).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려는 어리석은 행위는 즉시 멈춰야 한다.
둘째, 존엄사는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존엄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로 하여금 편안히 죽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인간을 존엄케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곧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자는 것 밖에 안 된다. 노르만 가이슬러가 지적하는 것처럼 단지 공리주의에 입각한 것일 뿐이다. 인간의 생명은 고통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욥의 교훈을 통해서 비록 그가 이유 없이 너무나 큰 고통을 당한 것이 사실이지만 죽음을 택함으로써 그것을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말할 수 없는 고통에 대안이 꼭 죽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생명의 존엄은 오히려 그것을 참고 인내하는 데서 찾을 수도 있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고난과 고통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이 고통과 괴로움을 완화시키기 위해 끝없이 노력해야하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두려워해서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것은 불신앙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은 지으신 자의 주권을 인정하는 데서 그 근거를 찾아야 한다. 오래 전(1994) 전주 예수병원에서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지 무려 6년 만에 소생한 사람도 있지 않았던가.
셋째, 아무리 엄격하게 존엄사를 법제화 한다고 할지라도 오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찬성하는 측에서는 존엄사의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의료윤리위원회 같은 심의기구를 설치하는 등 법적인 규제와 절차를 강화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법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고 해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오히려 모자보건법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불법낙태를 막을 수 없었던 것처럼 법의 약점과 허점을 이용해서 노숙자, 장애인, 또는 노인들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희생당할 가능성은 남아있다. 또한 치매노인, 정신지체 장애우, 장기간 혼수상태에 있는 환자의 가족들이 그 어려움에서 속히 탈출하는 수단으로 악용하려는 유혹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존엄사에 대한 세 가지 문제점을 통해 존엄사가 결코 성경적인 것이 아님을 깨닫고, 정부는 사람들이 존엄사라는 선택을 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정부와 교회는 견딜 수 없는 고통 때문에 존엄사를 택하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완화의료의 활성화가 이루어지도록 협력해야 하며, 특히 환자 가족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이길 수 있도록 임종 전 두 달 전에 집중되는 고가의 검사와 항암제 투여에 대하여 의료보험과 같은 제도적 지원과 함께 남용되지 않도록 적절한 규제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생명을 인간 스스로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생명의 존엄에 대한 믿음을 겸손히 인정하고 지키는 것이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