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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12-01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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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말씀사랑
 조회 : 5,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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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자살할 수 있는가?
요즘 우리 사회는 자살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사회가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되어가는 상황에서 참된 삶의 가치관의 혼돈에서 빚어지는 현상이 아닌가? 자살을 하는 유형을 보면 그 종류도 다양하다. 사업의 실패와 직장에서 생기는 어려움과 오해를 견디지 못해서 ,자기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 학업 성적의 부진으로 인해서, 졸지에 일터를 잃고 암담함과 생활고로 인한 막막함으로, 사귀던 이성 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해서 등등 가지가지다. 특히 지독한 생활고로 인해 견디다 못해 자기의 목숨을 끊는 경우 이들의 죽음에 대해 쉽게 도덕적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자살의 원인과 직접적인 계기는 이처럼 다양하지만 그 원인들의 중심에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연민(self-pity)의 감정이 자라잡고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견디기 힘든 고통스런 상황과 억울한 처지에 놓이게 될 때 사람들은 “나는 결백한데, 왜 나만 이런 오해를 받아야 하고 나만 이런 어려움을 격어야 하나” “꼭 이러한 모욕을 당하면서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라고 비관 하거나 분노한다.
이러한 현상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정작 자기 자신에게 밀착된 부정적인 생각이 도사리고 있고 그 생각이 자신을 사로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태가 더 심하게 되면 바로 다른 사람과 주위를 함께 고려하여 생각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에만 몰두하게 되어 자기 연민에 포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럴 때 합리적인 사고와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됨으로 사고의 균형을 잃게 되고, 이것이 결국 극단적인 행동을 하도록 충동을 받는다는 것이다.
1. 자살의 원인과 징후 자살의 원인과 징후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중요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몇 가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1) 자살의 원인 자살의 원인은 케이스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우나 '자살학'의 분야에서 연구하고 있는 몇 가지 원인을 소개한다. 첫째, 정신분석학적 이해이다. 이것은 프로이드의 이론을 중심으로 하는 것으로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기 파괴적인 죽음의 본능이 자살의 주범이라고 보고 있다. 프로이드는 자기영속 본능을 에로스로, 자기파괴 본능을 죽음의 본능으로 규정하였다. 이 두 가지 본능은 서로 다른 목적을 추구한다. 에로스는 최고의 안정 상태인 죽음을 저지하기 위해 종족을 번식하는 삶을 추구하고, 죽음의 본능은 영원한 안정 즉 유기체의 종말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프로이드 학파에서는 자살도 죽음의 본능이론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칼 메닝거는 죽기, 죽이기, 죽임을 당하기라는 세 가지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동기가 작용한다는 자살심리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둘째, 사회학적 이해이다. 이것은 19세기말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에 의하여 제기되었다. 그는 자살 현상을 하나의 사회병리로 보았고, 자살 현상의 연구 대상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라고 보았다. 뒤르켐의 연구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가족, 정치, 종교와 자살과의 연관성 문제이다. 셋째, 유전 환경적 이해이다. 이 이론은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자살의 유전성은 자살 성향 자체가 유전인자를 통하여 후대에 전달된다는 가설과 유해한 가정환경으로 인하여 자살이 한 집안에서 반복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모든 자살의 원인들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분석할 때, 하나님에게서 떠남 즉 죄로 인한 하나님과의 단절이 근본적 원인이다.
(2) 자살의 징후 자살의 문제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통해서 그 징후가 나타난다. 자살에는 몇 가지 가설이 성립된다. ① 자살자는 그 자신을 벌하기를 원한다. ② 자살자는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며 삶이 아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며 생애를 끝내려고 한다. ③ 자살자는 다른 사람을 상징적으로 죽이기를 원한다. ④ 자살의 행위는 심리적인 아무 의미도 없다. 즉 우울증이 가져온 뇌 속의 생화학적인 변화의 파괴를 의미한다. 이러한 가설 속에서 자살의 징후를 찾을 수 있는데, 우리는 여기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대표적 징후는 다음과 같다. ① 직접적인 언어의 경고. 자살하겠다는 의도가 포함된 말들을 예보하는 경우이다. 이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직계 보호자나 책임자에게 알리거나 전문 상담자에게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 ② 과거의 자살 시도. 과거에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 가운데 80% 이상이 실제로 자살을 한다. ③ 알코올 중독이나 다른 약물의 사용. 자살자의 3분의 1 정도가 술과 관련이 있다. ④ 우울증. 우울증은 자살의 심각한 원인이 되고 있다. 우울증으로 인한 좌절감은 스스로 죽음의 모험을 증가시킨다. ⑤ 사별. 지난 3년 동안에 사별을 경험한 사람은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가 많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안으로 죽음을 택할 위험이 많다. ⑥ 건강상태. 심각한 질병은 자살의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특히 불치의 병일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 ⑦ 간접적 진술과 행동의 표시들. 자살을 시도하려고 계획하는 사람들은 '멀리 가야겠어요'와 같은 표현으로 자기의 의중을 나타낸다. 또 자기의 귀중품을 남에게 주거나, 약이나 칼 같은 것을 모우는 경우이다.
2.자살에 대한 성경적 입장 성경은 자살의 문제를 깊이 다루고 있지 않지만 몇 가지 사례들이 나온다. 아비멜렉의 자살(삿 9장), 아히도벨의 자살(삼하 17장), 시므리의 자살(왕하 16장), 유다의 자살(마 27장) 등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자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죽음의 의미를 확실히 해야 한다. 죽음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본래적이고 확실한 것이지만 미경험 영역의 것이다. 죽음이란 인간 삶의 본질적 문제이지만 죽음이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같이 생각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죽음이란 인간에게 있어서 보편적 현상이기는 하지만 결코 자연적 현상이 아니다. 죽음이란 중단이나 소멸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의 이전이다. 로마서 5장과 고린도전서 15장은 죄와 죽음의 불가피성, 죽음에 있어서의 율법의 역할에 대한 분명한 교훈을 하고 있다. 죽음이란 죄의 결과이다. 죽음이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죄로 말미암아 온 비정상적인 것이며, 하나님의 창조 구조에서도 비본래적(非本來的)인 것이다. 성경은 죽음이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 여부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다. 하나님은 금령(禁令)을 주시고, 이것을 어기므로 죽음이라는 결과가 왔음을 명확히 하셨다. 그래서 개신교나 로마교(천주교) 모두 스스로 자기 생명을 끊는 것은 자연과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일이라 하여 정죄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자살이 죄인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 첫째로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청지기이지 자기 마음대로 생명을 처리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기에 인간은 단지 생명을 관리하도록 위임받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이 그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권리는 있지만, 생명 자체를 스스로 끊을 수 있는 결정을 내릴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생명에 관한 권리는 오직 창조주 하나님께 속하는 고유 권한이다(신명기32:39절)
둘째는 자살은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행위로 보기 때문에 심각한 죄악으로 간주된다.(창1:26절~27절)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다른 모든 피조물과는 다르게 인간에게만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 즉 하나님을 닮게 만드셨다.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천하보다 귀한 존재라는 근본적인 진리에 기인하고 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서 이웃을 살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단호한 형벌을 가하고 있다. 마찬 가지로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끊는 것도 동일한 차원에서 이해해야 된다. 자살은 단순히 자기가 부여받은 생명을 스스로 끊는다는 차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짓밟는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자살은 하나님의 고유한 권한을 침해하는 일임과 하나님의 형상을 손상시키는 중대한 죄악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라는 고귀한 특성이 부여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의지는 인간 스스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는 기본 목적을 가지고 있다. 자살은 자유의지의 영역이 아니다. 자살은 하나님 앞에서 죄이며 인간이 범하지 말아야 할 계율이다.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죽음을 정복 하셨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자살은 기독교의 신앙을 정면으로 거스르게 되고 하나님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 된다. 죄로 인하여 죽음이 이 세상에 왔고 그 결과 인간은 죽음으로 인해 신음하고 이것에서 해방과 자유를 갈망하여 왔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망을 우리가 이겨야할 “원수” 라고 표현하지 않았는가?(고전15:55~57절) 예수님은 친히 내가 온 것은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요10:10절) 이라고 하셨고 실재로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스스로 생명을 버리고 죽음을 택하는 자살 행위는 주님의 사역을 헛되게 하며 우리가 이겨야할 원수인 사망에게 굴복하는 것이 된다.
3. 자살에 대한 윤리 문제 첫째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은 단순히 우리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창1:26,28절) 즉 이 땅에서 주의 영광을 위해 주의 뜻에 부합하는 사회와 문화를 건설하고 이웃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자살은 이 사명을 거부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위임하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는 삶 보다는 자신의 탈출구로 생각하는 자기중심적이고 매우 이기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둘째 한 사람의 자살은 비록 그 동기가 어떠하든지 결과적으로 그와 관계된 많은 가족 친구 동료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슬픔과 고통을 남겨 놓게 된다. 특히 그 가족에게 주어지는 슬픔과 비탄은 형언할 수 없다. 자녀 부모 관계된 사람이 당할 고통뿐 아니라 실제적으로 해결해 나아가야할 현실적인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본인은 자살함으로 본인의 뜻을 이루고 또 문제를 극단적인 방법으로 처리하였을지 모르나 남아있는 가족과 관계된 사람들에게 여러 현실적인 문제와 고통을 넘겨주고 간다는 점에서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가?
셋째 자살 행위는 그 자살의 원인에 직 ,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사람에게 공평하지 못한 비난을 받게 하거나 또 죄책감을 안겨 줄 수 있기에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점이 뒤따른다.
3. 그리스도인의 태도 자살은 죄악된 현실에서 없을 수는 없는 현상이나 그리스도인은 이것을 줄이고 방지하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 우리는 무어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과 이곳에서의 삶에 대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를 갖고 살아야 한다. 비록 우리의 삶이 부조리하게 보이고 고통스럽게 보일지라도 살아 볼만한 가치가 있는 삶이라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하루하루를 승리하며 살아가기가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이나 그렇다고 자신을 비관하고 지나치게 자기를 연민하는 유혹에 빠진다면 멸망의 길로 이끄는 마귀의 집요한 공격에서 벗어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삶이 때로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으로 삶을 포기하고 싶은 지경에 빠질때가 왜 없는가? 그러나 이 고통을 성숙한 길로 나아가는 좋은 기회로 삼으면 되지 않을까? 엘리야의 경우도 그가 허탈하여 사명지를 버려두고 로뎀 나무 아래서 죽여 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하였음을 우리는 안다(왕상19장).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휴식을 주시고 새로이 해야 할 사역을 보여 주셨다. 그리스도인은 자살의 충동을 느낄 만큼 고통스런 상황을 만나게 될 때 혹 하나님께 범죄(犯罪)한 것은 없는가, 회개할 것은 없는가를 생각하고 엎드려 간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공동체에 이런 유혹에 빠져드는 자가 없는가를 살피고 이런 자들과 교제하고 고통을 함께 나누어야 할 것이다.
자살은 결코 피할 수 있는 비상구도 도피처도 아니고 문제를 해결하는 길도 아니다. 나는 내 목숨을 내가 끊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씀한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반드시 하나님의 엄한 심판을 피할 수 없다.
결론 자살 문제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예방이다. 예방은 크게 개인적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에서 그리고 정책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면 우리 교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첫째, 바른 생명교육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기독교 세계관 교육으로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존귀성을 바로 알게 가르쳐야 한다. 둘째, 상담 사역을 통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회집을 중심한 프로그램에서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돌볼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지원과 양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자살자나 자살 기도자를 '믿음 없는 사람'으로 규탄하기 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양육하는 시스템을 형성해야 한다. 잃어버린 한 생명에게 우리의 관심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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