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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5-21 15:19
여전히 황폐한 일본 미야기현
 글쓴이 : 러브재팬
조회 : 12,836  
<日 미야기현엔 '쓰나미 상처' 여전>
여전히 황폐한 일본 미야기현
(다가조<일본 미야기현>=연합뉴스) 이충원 특파원 = 일본 미야기(宮城)현 다가조(多賀城)시 부둣가 공장지대가 대지진이 난 지 70일 이상 지난 20일에도 여전히 황폐한 모습을 하고 있다. 2011.5.21 <<국제뉴스부 기사 참조>> chungwon@yna.co.kr



 

(다가조<일본 미야기현>=연합뉴스) 이충원 특파원 = 이명박 대통령이 21일 일본 방문길에 들른 미야기(宮城)현은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지 70여일이 지났지만 지진과 쓰나미의 상처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궤멸적인 피해를 본 해안 도시인 나토리(名取)시와 다가조(多賀城)시는 대피소에 있던 주민들이 속속 돌아오면서 복구를 향한 활발한 몸짓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하지만 주민들이 있는 주택가에서 한 발짝 더 해변으로 향하면 여전히 처참한 현장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여전히 황폐한 일본 미야기현
(다가조<일본 미야기현>=연합뉴스) 이충원 특파원 = 일본 미야기(宮城)현 다가조(多賀城)시 부둣가 공장지대가 대지진이 난 지 70일 이상 지난 20일에도 여전히 황폐한 모습을 하고 있다. 2011.5.21 <<국제뉴스부 기사 참조>> chungwon@yna.co.kr

   이 대통령이 방문한 다가조시 문화센터의 대피소에는 380여명 남짓한 이재민들이 몸을 맡기고 있었다. 이달초만 해도 500명을 넘었지만, 상당수 이재민이 집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지역에 살 곳을 마련해서 빠져나갔다. 아직도 남아있는 이들 중 상당수는 갈 곳 없는 노인들과 쓰나미로 가족을 잃은 고아들이라고 했다.

   지난 14일에는 민단 미야기현 본부가 이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재일동포 이재민도 1∼2명 몸을 맡기고 있었지만 이 대통령이 방문한 21일에는 일본인들뿐이었다.

   다가조시 문화센터에서 차를 타고 바닷가 쪽으로 10분 정도 달리면 직접 쓰나미 피해를 본 지역인 사쿠라기미나미(櫻木南) 지구가 나온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다가조시 메이게쓰(明月)'에 해당한다. 한국 119구조대가 대지진 직후인 3월16일과 17일 수색활동을 벌이기도 한 이곳 주택에는 피난했던 주민들이 속속 돌아와 집을 치우느라 분주했다.

일본 센다이항의 육지에 올라앉은 배
(다가조<일본 미야기현>=연합뉴스) 이충원 특파원 = 20일 일본 미야기(宮城)현 센다이(仙台)항에 한 배가 쓰나미 물결에 휩쓸려 육지에 올라앉은 채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는 상태로 남아 있다. 2011.5.21 <<국제뉴스부 기사 참조>> chungwon@yna.co.kr

   지역 민단 책임자인 이창근(73)씨는 다가조시에 사는 재일동포 60여명은 단 한명도 인명피해를 당하지 않았고, 지금은 대부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차를 타고 다시 2∼3분 더 달려가 도착한 바닷가 공장 지대는 여전히 처참한 모습이었다. 센다이항에 인접한 이 곳에는 일본의 대표적인 전자제품 업체인 소니의 공장이 있다. 소니는 근로자들이 다시 출근하면서 활기를 되찾았지만 벽대신 공장 주변을 둘러싼 철망은 넘어진 상태 그대로였다.

   그나마 소니는 나은 편이었고, 센다이항에 인접한 공장은 건물 이곳저곳에 구멍이 숭숭 뚫린 채 유령의 집 같은 모습을 그대로 내보이고 있었다. 공장 화물을 실어나르던 철로는 제 멋대로 휜 채 땅바닥으로 내려앉은 전선과 부둥켜 안고 있었고, 센다이항 육지에는 거대한 배가 올라앉아 있었다.

일본 다가조시의 황폐한 집
(다가조<일본 미야기현>=연합뉴스) 이충원 특파원 = 일본 미야기(宮城)현 다가조(多賀城)시의 한 주택이 20일에도 여전히 황폐한 모습을 하고 있다. 2011.5.21 <<국제뉴스부 기사 참조>>chungwon@yna.co.kr

   이 지역에도 근로자들이 돌아와서 복구의 구슬땀을 흘리고는 있었지만, 얼마나 더 지나야 무지막지한 쓰나미 물결이 남긴 상처를 모두 씻어낼 수 있을지 예측하기도 어려웠다.

   눈에 보이는 상처보다 더 무서운 건 마음의 상처. 일부 주민들은 "도저히 무서워서 못 살겠다"며 어디론가 떠나버렸고, 남은 주민들도 언제 또 쓰나미가 밀어닥칠지 모른다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창근씨는 "바닷가에 적어도 20m 높이의 방파제를 쌓아야할 텐데 언제 될지 모르는 것 아니겠느냐"며 "주민들은 모두 이번 쓰나미가 '천년에 한번 있는 일'이라며 다시는 안 오겠지라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chungwon@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1/05/21/0200000000AKR201105210405000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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