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드기야의 기도 요청 (21:1~2)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바벨론은 유다를 복속시키고 1차로
포로들을 끌고 갔습니다. 그런데 시드기야 왕은 군사적 도움을 주겠다는 애굽의 말을 믿고 바벨론을 배반하고 애굽을 의지했습니다.
이를 안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다시 예루살렘을 포위했습니다. 다급해진 시드기야 왕은 그제야 예레미야의 예언을 기억하고 그에게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하나님의 기적만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해 순간의 위기만 모면하려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회복 없이 단지 기적만을 구하는 것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보다 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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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의 답변 (21:3~7) 예레미야는 시드기야가 원하는 대답과 정반대의 대답, 곧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했습니다.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은 ‘노와 분과 대노’(5절)로 표현됩니다.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자가 없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전염병과 기근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결국 느부갓네살 왕의 손에 죽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진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잔인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심판도 하나님께 속한 영역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불순종과 죄를
미워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허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인간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이 구원받을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악을 멀리해야 합니다.
●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보다 그분이 주시는 선물을 더 추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 거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면서 내가 원하는 응답만을 기대하지 않습니까? 내가 지금 버려야 할 습관적인
죄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고 자신의 안위만 구한 시드기야의 모습에서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죄의 유혹이 있을 때마다 십자가를
생각하게 하시고 주님 앞에서 정결한 자로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