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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9-05 02:00
<정훈택 교수의 열매로 알리라> 요약
 글쓴이 : SWIM
조회 : 971  

<정훈택 교수의 열매로 알리라> 요약

 

                                                                  강현구

 믿음과 행위의 관계는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물음이었다. 본서는 그 관계를 학문적으로 정립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음이란 기독론적 지식의 토대 위에서 살아 계신 그를 의존하고 자신을 전인적으로 내어맡기고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따름”은 “행위”라는 열매로 나타난다. 믿음은 행위의 근거나 전제, 행위의 가능성을 나타내는 것이고 행위는 믿음의 증거, 결과, 열매로 나타는 것이다. 이 두 요소는 서로를 보중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전인적인 응답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믿음과 행위는 불과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본서는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서론을 통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2부에서는 마태복음의 이중구조와 마태복음의 구속사관이라는 주제를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3부에서는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주제 하에서 마태복음의 기독론과 천국, 규범이라는 의미를 다루고 있다. 4부에서는 인간의 응답이라는 주제를 통해서 믿음과 행위, 믿음과 행위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마태복음의 저자는 믿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믿음은 이스라엘이 버림받는 동기이고 천국이 새 백성인 교회에게 넘어가는 원인으로 제시되고 있다. 유대인들의 불신앙은 이방인들에게 천국이 이르는 길을 열어주게 되었다. 믿음은 천국의 전제 조건이라는 말이다. 이 믿음은 예수의 기적과 권능에 대한 믿음이라기보다는 기적과 권능의 주체로서의 예수의 인격에 대한 믿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첫 복음서는 행위 또한 천국에 이르는 전제 조건으로 제시된다. 이것은 구원을 가져오신 예수와 의를 요구하시는 예수라는 기독론적-교회론적 개념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구를 위해서 본서는 마태복음을 독립적으로 그리고 종합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마태복음은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연대기적인 구조와 주제별 구조이다. 마태복음은 이 두 요소를 혼합하고 있는데 주제별 구조는 예수의 생애와 얽혀 있고 연대기적 구조는 일정한 주제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발생하는 마태복음의 형태상 구조의 문제점은 기독론과 교회론적인 주제와 관련되는 것이다. 마태복음은 기독론적인 책으로 예수가 누구인지를 소개하는 책이며 동시에 교회론적인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이것은 마태복음의 첫 부분과 끝 부분을 보면 명백하게 드러난다. 시작부분에서 희미하게 암시되던 기독론이 마지막 부분에서는 교회론과 결합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산상 설교는 누가 천국의 시민인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와 하나님의 의를 구분하는 것이다. 마태복음은 이러한 두 집단적인 구분을 통해서 좋은 열매 맺는 백성과 열매를 맺지 못하는 백성으로 제시한다. 첫 복음서에서 예수는 가르치시며 전파하시고 고치시는 이중적 사역을 하셨다. 예수의 교훈과 말씀의 사역을 통해서 무리들 가운데서 “제자”들이 나오게 된다.

 

마태의 구속사관을 찾는다는 것은 시대의 분기점을 찾는다고 보아도 무방한 것이다. 마태복음의 기자는 예수의 오심과 그 전 시대 그리고 그 후 시대를 구분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역사의 정점으로 동시에 새로 쓰여 질 역사의 서론으로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예수의 시기는 육체적 사역의 시기와 영적인 사역의 시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요한을 옛 시대를 대표하는 자로 본다면 성육신은 새 시대를 여는 분기점이다. 예수는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새 시대를 도래하였다. 이것은 육체적 임재와 영적인 임재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전자는 제자들의 얻음과 배움의 시기이고 후자는 이 제자들이 사역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마태는 반유대주의적, 반바리새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이제 유대인들은 언약백성의 개념에서 빠져나가게 되었다. 이제 유대인은 “무리”와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집단으로 구분되는데 이 “무리” 중에서 천국의 백성인 “제자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마태의 기독론은 소위 “칭호기독론”으로 불려진다. 예수에 대한 호칭은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인자, 주라는 용어를 통해서 특징적으로 불려진다. 이러한 호칭들은 각각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 모든 호칭들이 총칭적으로 모이게 될 때 “예수”라고 불리는 것이다. 마태에게 있어서 천국이란 포괄적인 개념으로 이해되었다. 그것은 장소적인 개념 뿐 아니라 왕으로서의 기능 곧 통치의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구원론적 성질의 개념으로서 과거-현재-미래는 도식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그것은 주체로서의 하나님의 통치와 객체로서의 백성이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통치로 연결되어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혹은 역사 후에 이루어지는 개념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나라는 예수의 사역을 통해서 이 세상 가운데 도래하였다. 더 이상 미래의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또한 천국은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구원과 은총을 뜻하고 심판과 형벌을 의미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는 선생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그러나 선생이라는 용어는 긍정적인 의미의 용어가 아니다. 유대의 관습에 의하면 제자가 그에게 율법과 구전을 가르칠 스승을 택했는데 선생은 율법과 구전의 권위 종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이 주도권을 가진 독특한 선생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예수의 교훈과 가르침은 예수의 삶과 인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절대적 규범으로서 작용한다. 율법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준 “삶의 규범”이었다. 따라서 규범으로서의 율법의 기능은 영속적인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이 율법을 새로이 해석하고 새로운 교훈을 줌으로서 옛것과 새것을 동시에 실천해야 할 것을 강조하셨다. 왜냐하면 두 경우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파생된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반명제라고 불리 우는 것들은 예수께서 율법에 대한 폐지 혹은 반대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권위 있는 자로서 율법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함께 옛것과 새것을 동시적으로 지켜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 율법은 이스라엘의 사회적 삶의 원리였다면 예수의 교훈은 좀 더 포괄적으로 전 세계적인 개념으로 확대된 것이다. 이 교훈이 새 시대에 적합한 규범으로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이 규범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과 예수의 교훈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인간의 응답으로서의 믿음과 행위, 그리고 믿음과 행위의 관계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믿음이란 것은 기독론적인 지식에 근거해서 예수를 믿고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행위는 동전의 양면처럼 믿음에 따라서 나오는 다른 요소, 상호보완적인 개념이다. 예수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제자가 될 수 없는 것처럼 행위가 없는 믿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선, 좋음, 의로운 행실을 통해서 열매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마태복음의 기자는 믿음과 행위를 모두 천국의 조건으로 제시한다. 믿음은 예수의 사역에 대한 응답으로서 기능하는 것으로 구원을 중재하는 기능을 가진다. 구약을 관통하던 “언약-계명”의 도식이 이제는 “믿음”이라는 요소로 대치된 것이다.

 

또한 행위는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올바른 반응 방법이다. 이것을 지킴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믿음과 행위는 둘 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하여 요구되는 필수적인 증명서이다. 둘 중 어느 하나에 이상이 생기든지 하나를 결여하게 되면 이것은 천국에서 내던지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또한, 행위는 믿음에 의해서 제한되기도 한다. 예수에 대한 믿음 때문에 행동이 제한되는 것이다. 나무와 열매 사이에 끊을 수 없는 인과관계가 존재하듯이 행위란 그의 내면에 가지고 있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 따라서 마태는 누가 선한 행동보다는 누가 선한 사람이냐는 것에 관심을 가진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에 있는데 그것은 예수를 믿음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이로서 믿음은 행위에 선행하게 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내면적인 깨끗함 없이는 외면적인 깨끗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는 예수에 대한 믿음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며 예수의 가르침은 자신을 향한 믿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마태복음에서는 행위도 믿음과 동일하게 중요한 것이다. “믿음과 행위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와 관계되지만, 믿음은 동작자가 수동적인 위치에서 하나님과 예수를 바라보고 의존하며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받아들이는 기능을 가리키고, 행위는 다른 사람들을 지향하며 하나님의 뜻과 예수의 명령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기능”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예수를 향한 태도”와 “하나님의 뜻의 완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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