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선교전략
김 환, 조영상
사회를 논평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일본사회가 변화하는 징후를 구하여 마지 않는 듯하다. “일본이 이렇게 변하여 가고 있지. 않은가” 라고 말할 근거를 찾기 위하여 새로운 유행이나 붐에 곧바로 눈길을 돌린다.
최근의 유행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십대들이 머리를 뒤로 묶는 것이라든지 염색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것들은 지극히 작은 일례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사회적
변화에 그리 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본다. 몇 세대나 계승되어온 대세순응주의(大勢順應主義)의 전통이 약간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뿐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다른 사람과 다르게 자기 자신을 나타내고자 하는 십대들은 실상은 지금까지 해온 것 이상으로 보수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머리카락을 염색하는 것이라든지, 여유가
있는 시간에 텔레폰 클럽(전화를 통해 이성교제를 시작하게 하고 얼마의 봉사료를 받는 클럽으로, 십대들의 매춘 행위의 온상이 되고 있다)에 전화를 건다든지 하는
것은 실은 그들의 친구들이 모두 하고 있는 것을 자신도 해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혼 및 남녀관계에 빠른 가치관의 변화
그러나 사회 가치관의 본질적인 추이(推移)를 확실히 보여주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장 현저한
예는, 결혼이나 남녀관계에 의한 사고방식이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의
인구통계표를 보면, 지난 1996년에 이혼한 커플의 수가
지금까지 해서 최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여성쪽에서 신청해서 성립된 이혼의 증가율이 점점 높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계에 있어서도 일본사회의 현황에 대해서 많은 것을 파악할 수 있다.
먼저는, 선을 보는 제도가 붕괴되어 가고 있다. 두번째는 일하는 여성, 특히 중앙 관료직의 여성이 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성의 노동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여성이 늘어가고 있음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녀들은 불만족한 결혼생활에 참고 고생해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남녀관계의 균형이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점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세 번째로 최근 통계는 이혼에 대한 일본고유의 편견이 불식(拂拭)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혼에 관한 사회적인 낙인이나, 이른바 '붕괴가정'의
자녀들에 대한 편견도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일본의 대기업들이, 이혼한 부모를 두고 있는 지원자에게 차별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부부들의 불행한 결혼생활에도 불구하고(자녀들을
고려하여) 그 상태를 유지하도록 압박하여 왔던 것이다. 이와
반면에 “자녀들을 위해서”라는 말은 이혼시에 서구인들이 잘
쓰는 말로 지나간 세대에 있어 동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를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일본사회가 가족이라고 하는 단위, 조화가 유지되는 인간관계를 대단히
중요시해왔지만, 근래에 이르러 이러한 태도가 유연해지고 있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현상으로 본다. 아직도 일본에서는 동서(同棲)라고
하는 개념이 달갑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입적하지 않고 동거하고 있는 커플에 대해서는 무언가 부도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 구세대의 가치관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고 있다. 애인과 결혼 관계로 살기보다는 동서관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동서를 ‘불의의 생활(不義, 莫: Living in
sin)'로 통념적으로 여겨왔던 구세대의 인식에도 불구하고 신세대는 그러한 사회적 속박을 과감히 벗어던지고,불편한 결혼관계보다 자유로운 동서관계를 선택하고 있다.
생명가치를 경시하는 신세대
최근 일본 관서지방의 중요 도시인 고베(神戶)에서 세상을 경악하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것은 고베시의 어느
초등학교 6학년 남자 아이가 목과 사지가 절단된 채로 참혹하게 살해당한 모습으로 발견된 것이었다. 일본 전체는 그 뉴스를 접하자 경악과 공포로 전율하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에 범인은 범행성명을 당당히 ‘고베신문’ 에 써 보내었던
것이다.
필자도 그것을 읽어보았거니와, 범행성명은 조리있게 심지어 철학적인
심오를 갖추어서 쓰여진 것이었다. 범인은 그 성명에서 자신의 존재가 너무나도 사회에 인식받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사회에 입증하기 위해 이러한 행동을 했노라고 밝혔다.
필자도 이러한 정도의 확신을 가지고 범행한 사람이라면 적어도 대학 졸업 내지는 중퇴의 철학적 소견을 가진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일본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30-40대의 외골수
남자가 범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치밀한 경찰의 범인 색출작업 끝에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사람은 죽은아이와 같은 아파트 단지지에 사는
중학교 3학년 남자학생이였던 것이다. 이 보도로 일본열도는
다시 한 번 더 전율하게 되었다. 그의 범행 성명 가운데는 “나를
이와같이 만들어낸 의무교육과 의무교육을 만들어낸 사회에 대해 복수한다”고 적혀 있었다.
일본의 의무교육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9년간인 데, 이 의무교육은 예의바르고 일 잘하는 일본인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꽉 짜여진 교육커리큘럼 속에 아동들을 집어 넣었다가 9년 후에 끄집어내는 것으로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따라서 충분한
인간성(혹은 인성)의 함양이라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 충격을 받고 하시모토(橋本)총리대신도 일본의무교육에 대한 재평가와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던 바 있다.
일본의 신세대는 무엇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는가? 의식 있는 많은
사람들은 신세대가 건전한 영향보다는 불건전한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있다고 한탄하고 있다. 타락한 비디오
테이프,불량만화, 폭력 전자게임, 이와같이 심성함양에 있어서 해가 되는 요소들이 더 많이 신세대를 움직여가고 있다는 것이다.
확실한 가치관 찾지 못하는 신세대의 정신적 방황
일본 전체, 그 중에서도 신세대를 지배하는 기준과 같은 가치관이 존재하는
것일까? 확실히 구세대는 그러한 가치관이 존재한듯이 보인다. 천황을
최고 정점으로 하여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각 민족이 함께 번영하는 세계를 건설한다는 이상(理想)과
같은 것이 있었다. 이른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의 구현이 지난 세대의 일본인들에게 주어진 꿈이요, 사명이었다.
천황을 현인신으로 숭배하는 신도(神道)는 아무런 저항감없이 국민의 기본윤리와 삶의 스타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천황과 대동아공영권의 건설을 위해 도움이 된다면 특공대(特次隊)의 일원으로서 희생제물이 되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패전 이후 그 이상은 무너지고, 신으로 여겼던 천황도 하나의
인간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된 일본인은 심한 가치관의 혼동 내지 공백 속에 빠지게 된다. 다행히 미군의
주둔과 한국전쟁으로 인한 특별경기의 발생으로 그들은 그 혼돈과 공백 속에서 고민할 사이도 없이 일과 부의 축적에 힘을 쏟게 되었다. 말하자면 돈과 일이 그들의 신이 된 것이다.
그러나 전후 50년 동안 긴 태평세윌과 경제적 운영을 누린 지금에
와서 그들은 확실한 가치관을 발견한 것일까? 이제 더이상 천황도, 국가도, 세계평화도 그들의 목적가치가 되지 못하고 있다. 향락산업이 세계
어느 나라 못지 않게 번성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곧 이 세대의 일본인들의 정신적 상황을 입증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국제 향락주의적 삶에 지친 사람들이 고베시의 남자 중학생처럼, 혹은
오움 진리교의 '아사하라' 처럼 기상천회한 일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자하는 것이 아닐까?
일본의 유명한 문학평론가 후쿠다 가즈야(福田和也)씨는 근래에 어느 사회평론지에 “왜 일본인은 이토록 바보가 되었는가?”라는 에세이를 써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또 시이나 모토오(住名素夫)참의회의원은 「가치관 없는 일본의 몰락」을 써서 지금의 일본의
상태를 우려하고 있다.
문제상황은 곧 기회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문제상황은 역사의 당연한 귀결이다. 절대자
하나님에 대한 참다운 신앙 없이는 가치관은 혼동되기 마련이며 갖가지 죄악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천황제도, 대도아공영권 건설, 경제적 부요,
향락주의 문화 등을 두루 방황하여 맛본 그들은 결국 이 지상에는 영원하고 참다운 만족을 주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 같다. 고대 로마의 번영에 식상한 로마인들이 나중에 그리스도교를 겸허히 수용한 것처럼, 모든 현세적인 가치에 싫증난 일본인들이 이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니 서서히 그러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아직도 일본특유의 민족주의나
배타주의에 심하게 세뇌당하지 않은 신세대에게서 영적 부흥을 기대해보는 것이다.
육체가 건강을 유지하려면 정기적인 검진을 잘 받아야 한다. 사전검사로
질병이 조기발견된 경우는 대부분 고칠 수가 있다. 예방의학의 차원에서도 정기검사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최근 교회성장을 애기할 때에 반드시 교회의 종합적인 진단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한다. 그런 면에서 일본교회를 위하여 일하는 선교사로서 주님의 유기체인 일본교회를 진단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의사의 진단을 근거로 처방을 받아 질병을 치료하듯이 지극히 소박하지만 필자 나름대로 일본교회를 진단하여 보고, 거기에 대응하는 선교방법을 자문해보면서 성장하는 일본교회 속의 선교사가 되고 싶어 이 글을 쓰게 됨을 먼저
독자들이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진단과 함께 문제점을 발견했다면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 문제를 알면서도
그냥 무관심하게 걱정만 하고 있다면 가장 어리석은 교회가 될 것이며, 그 교회의 지도자나 선교사는 더
어리석은 하나님의 일꾼이 분명하니 필자 자신의 선교자세를 정립해본다는 의미에서 정리하는 것임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일본교회의 당면한 과제들
첫째, 기독교선교역사 450년을
가지고 있으나 아직도 교회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도시가 너무나 많다. '97년 일본 교회정보센터(CIS)의 보고에 의하면 국내의 1,750개 지방행정자치도시에 교회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단위 무교회 7개 도시, 인구 2만명 이상 77개
도시, 기타 1,750군과 촌에 하루 속히 개척교회가 설립돼야
한다. 평균신자가 30명이면 교회자립이 가능한 상황에서 안주하기
쉽고, 개교회 중심이 되기 쉬운 경향에서 주님의 몸된 교회의 전체성을 생각하여 미전도지역 선교에 더욱
힘써야 한다.
둘째, 교역자의 양성이 시급하다. 최근
사도다께시(佐勝丈史)교수의 교직자현황조사를 보면 현재 일본
개신교회가 당면한 교직자의 고령화문제가 심각함을 알 수 있다.
도표 1에서 보듯이 60세
이상의 목회자가 41.8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10년후 2005년이 되면 고령화는 더욱 추정화되고, 2050년이 되면 현
일본교회의 반 이상은 무목교회가 될 수 있다는 부정적인 가능성도 예측된다. 참고로 현재 활동하고 있는 63개 신학교의 조사결과를 보면 <표>와 같다.
졸업 생 가운데서 몇 명이 목회에 전념하게 될지 미지수다. 신학교
졸업 후에도 평신도로 남고, 목사 부인의 상당수가 여성 신학생 중에서 나오고, 그리고 유학하는 신학생들을 빼고 나면 교직자로 헌신하는 숫자는 극히 제한적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일본교회의 성장이 정체현상에서 감소현상으로 변하고 있다. 교회정보서비스(CIS)가' 97년 2월 발행한 뉴스레터에 의하면 과거 5년간 개신교회의 세례받은 자의수와, 일요교회학교의 출석자의 통계를 알 수 있다.
아래 통계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일본 전인구의 0.8퍼센트가 크리스천인구로서(신구교 합해) 50년전인1948년도의
기독교인구 역시 0.8퍼센트였다. 그동안 기독교의 교세가
조금도 변함없이 정체현상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넷째, 지금의 일본교회는 신자들에게 충분한 생명력과 활기를 불어넣어주지
못하는 형편이다. 전통적인 교회의 각종 모임은 형식에 치우쳐 있으며,
사회생활에서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 평신도지도자들을 키워내지 못하고 있다. 반기독교적인
사악한 세력들이 세속화를 부추기고 있는데, 교회는 대항할 힘을 잃어가고 있는 분위기다.
최근 일본크리스챤 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기존의 크리스천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기사를 대한다. 교회에서 별다른 매력이나 행복감을 찾을 수 없으며, 오히려 교회생활이
더 피곤함을 가져다준다는 내용들이다. 이런 현상은 교회가 외부의 세속문화에 의하여 위협을 받는다는 것과
아울러 교회내의 지도자 신자들도 세속주의에 의해 오염되고 있다는 증거다.
21세기 일본교회의 리더가 될 청년층이 교회를 외면하게 되고 떠나버리게
된다면 서구교회들처럼 교회의 고령화이후에 교회가 문을 닫게되는 패턴을 피할 수가 없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보인비는 “다음 세대에 세계를 다스릴 종교는 2세들에게
얼마나 그 종교적인 신앙과 교리를 잘 교육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했다.
21세기의 교회는 지금의 청소년들이 책임져야 한다. 교회는 청소년 선교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복음적으로 보수적으로 절대신앙의 교리를 양보하지 말고 가르쳐야 한다. 교회가 예배만을 위한 공동체가 아니라 전도와 지도자양육의 공동체가 되어 세상에서 빛을 발하는 신행족(信行族)의 공동체가 되도록 탈바꿈하지 않으면 안된다.
개신교의 지상천국이라는 미국의 어느 자선사업연구기관의 보고에 의하면
"미국의 교회는 2090년도에 가서는 하나님의 성회교회와 남침례교회를 제외하고
다 없어지고 말 것이다"라고 결론지었다.
한 예로 영국성공회는 명목상신자가 2천만명인데 그 중 5퍼센트인 약 1백만 명이 교회 출석을 하고 있다. 1970-1980년 사이에 3천개의 교회가 폐쇄되어 상점이나 우체국으로
팔렸고, 약 2백개는 모슬렘사원으로 팔렸다"(대한성공회 정철범주교의 서울, 동경21세기선교대회 주제강연중)고 했다.
이것은 구미 현대 기독교(Post-christianity) 국가들의 현상을 설명하는 실례이지만, 일본교회도 복음적인 생명력을 상실하고 청소년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전수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텅텅 비게 되어 청소년들의
영혼은 세속주의의 늪에서 계속 죽어갈 것이 뻔하다.
다섯째, 일본의 교회는 의외로 교파와 교단, 단체의 벽이 두텁다. 현재 일본개신교는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뉘어져있다. 가장 큰 그룹인 NCC(세계교회협의회)계열과 복음주의적그룹인 JEA(일본복음동맹) 계열과 카리스마적교회그룹인 NRA(일본리바이벌동맹) 계열이다. 어느 곳에도 협력치 않는 수없이 많은 단립교회들은 제외하고라도
위의 세 그룹 사이의 일치와 협력의 자세는 너무 많이 결여되어 있는 형편이다.
일본기독교는 항상 마이너리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복음을 전하는 중대한 사명앞에서 일치를 위한 노력을
등한히 한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루 속히 소수파의 열등감으로부터 벗어나서 모이고, 힘을 합치고, 적극적인 범민족복음화운동에 뭉치는 역량을 키워야 할
것이다.
여섯째, 일본교회 안에는 애매한 신앙을 가진 신자들이 의의로 많다. 유일신이고 절대주권을 가진 하나님을 향하여 절대적인 신앙을 가진 신자들이 드물다. 역사적인 배경이나, 사회적 문화적인 배경을 이유로 해서 일본적인
기독교, 즉 적당히 신앙생활하는 신자가 많다. 기독교는 분명히
한 개인개인이 하나님 앞에서 책임있는 자기결단을 하게 한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회개와 더불어 절대신앙인으로의 결단을 한다.
이런 면에서 일본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 앞에서 획기적인 결단을 할 수 없는 나약함을 그대로 허용하는 듯한 심리조작이
있다. 예를 들면 자신의 신앙적인 나약함이나 고민을 죄로서 자각하는 방향이 아니라 애매하게 그 심경을
미화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죄책이 하나님에게의 통회나 고백, 하나님의 은혜를 향한 자기변혁이
되지 않은 채, 비학적 의식과 자기도취 속에서 죄책감과 결단의 촉구를 용해시켜 버리는 것이다. 분명히 일본인들은 자기신앙이 애매함속에서 안주해버리든가, 자기변혁을
촉구하는 도전에 대해 책임을 가지고 반응하든지 결단해야 한고 다께다 마꼬또(竹圈 眞)목사는 말한다.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옳고 그름에 대한 절대기준이 없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행동지침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이것을 앤도슈사꾸(遠臟 周作: 가톨릭 문학작가로 「침묵」이란 소설의 작가)적인 크리스천이라고 해석해보고
싶다. 문제가 된 작품「침묵」이란 소설에 등장하는 선교사 로드리고가 후미에(그리스도를 색출하기 위하여 밟게 했던 그리스도마리아상을 새긴 널쪽)를
밟으라고 강요당할 때,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밝는 것이 좋다. 나는 너희들에게 짓밟히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났다. 너희들의 고통을 나누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왔노라"는
소리에 후미에를 밟고 지나가는 것이다. 여기에서 밟는 행위, 곧
기독교를 완전히 버리는 배교의 행위까지도 하나님이 용납하신다고 오해하게 하는 지극히 일본주의적이고, 타협과
과학적인 합리주의적 신앙이 용납되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의 회개처럼 성상을 밟은 뒤에 참회하는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이 용서하신다는 해석은 문제가 없다고 하겠으나, 밟는 것 자체도 포용이 되고 그러면서도 그가 가장 예수님을 잘 따르는 제자로 부각이 되는 것은 성서를 문학적으로
해석하고, 뛰어난 문학적인 작품으로서는 읽고 연구하면서도 절대신앙의 기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는 보지
않으려는 경향인 것이다.
매년 베스트셀러는 성경이다. 그러나 그 성경이 교양적인 교과서나 윤리, 문학을 논의하는 텍스트로서 일본인에게 전해진다면,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 3:15-16)는 경고를
들어야 할 것이다.
일본선교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교회지도자들을 위한 재교육, 신앙의 재무장과 영성훈련이 절실하다. 지금까지 일본목회자들은 성실한 훈련들을 받아왔다. 각종 성회, 사경회, 강습회, 수양회들이
교회성장에 많은 도움을 주어왔다. 일본처럼 질높은 세미나들이 많은 나라도 드물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런데 지나치게 이론적이고 방법론적인 연수들이 아니였던지, 또 지나치게
성장모델을 모방하려고만 하지는 않았는지 반성이 필요하다. 더구나 평신도들에게는 지도자로서의 재교육의
기회가 얼마나 주어졌었던가? 너무나 많은 회의와 토론, 공부들이
목회에 전념하게 하는 일들의 방해가 되지 않았는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 또 절대신앙과 절대훈련․절대행동으로
무장된 지도자교육이 시급하다 하겠다.
군국주의 아래서 일본인들은 "인생은 20년"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것은 20살이 되면 전쟁터에 나가 어떻게 살고, 죽어야 하는지 결단하는 계기였기 때문이었다. 모든 청년들은 살아있는
신(神)인 천황을 위해 죽는 것이 최고의 철학과 미덕이라고
확신했기에 천왕만세를 외치며 죽어갔다. 패전 후에 이 정신적인 공동(空胴)현상을 예수 그리스도가 충분히 채워주기도 전에 물질주의와 세속주의가 빼앗아갔다.
이제부터라도 명목상의 신자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된 그리스도인이 많이
The아져 나와야 한다(롬14:7~8).목회자가
먼저 변하고, 평신도 지도자가 바뀌면 교회는 개혁되어가고 성장하리라고 믿는다.
둘째, 차세대 리더가 된 청소년 목회에 최대의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 국제 CCC의 청소년사역담당자가 일본 CCC를 방문하여 “전세계의 크리스천의 85 퍼센트가 18세 이전에 결심하였다”고 보고했는데, 정말 충격적 이었다.
일본의 20대 전반의 청소년들 85퍼센트가 “종교에 대해 그렇게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고 1995년 9월 23일
아사히신문이 여론조사를 발표했던 것이 기억난다. 또한 필자가 순회하며 섬기는 일본인 교회안에는 청소년이
이해되고, 소중히 다뤄지고, 신앙의 계승이 확실하게 이주어지고
있는 교회가 많지 않다.
일본은 1960년대 고도성장을 배경으로 가정이 가장 많은 피해를 받아왔다. 특히 자녀들은 학력 중심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입시지옥을 경험하면서 부모의 영향권에서 쥬크(학원)중심이나, 가정을
이탈하며 각종 유행과 쾌락적인 세계로 침몰해왔다. 시간에 쫓기며 노동 중심과 경제 중심으로 움직이는
부모와 기성세대는 변화무쌍한 십대 자녀들을 귀찮게 여기고 꾸짖기를 마치 제자들이 어린아이들이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을 금하듯이(마 19:13-15절)에
하였다.
천국이 어린아이들의 것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도(마 18:1-14) 청소년에 대한 무관심, 속수무책에 가까운 교회학교
운영에 일대변혁이 필요하다. 사회나 교회가 청소년문제를 이대로 방치해 둔다면 일본의 가정과 사회는 걷잡을
수 없이 붕괴되어 갈 것이다. 공부에 지치고. 유행이나 오락에
지쳐 공허감에 빠지고, 친구관계나 이성관계로 고민하며 성의 문제로 상처받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쉼터를
만들어주고 사랑과 복음으로 치유해주며, 자존심과 자긍심의 인생 목표를 확실하게 가르쳐주는 사역을 교회가
감당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청소년을 위 한 사역으로는 먼저 청소년 사역자와 전문적인 청소년 선교단체를 재정적으로 정신적으로 충분히
지원해야 한다. 소학교의 약 880만 어린이, 중고등학교의 약 1천만학생, 대학의
약3백만대학생을(1994년
3월 일본본부성 통계참조) 교구로 삼고 일하는 몇 되지 않는 선교단체와 사역자를 도와야
한다.
또한 청소년들이 알기 쉬운 찬송가와 성경 보급이 이루어져야한다. 초스피드한
세계에서 적응된 젊은 층들이 편안하고, 명쾌하게 교회생활 할 수 있는 배려와 영적 분위기가 갖춰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회마다 적극적으로 창조적인 프로그램을 계발하여 적용해야 한다. 연령층에 맞고 정서에 어울리는 활동과 함께 진학문제, 이성교제문제, 가정문제, 친구관계 등의 적절한 상담과 도움을 주는 캠프, 써클활동, 스포츠나 취미활동 등은 교회가 계속 계발해야 할 영역이다.
또 컴퓨터를 좋아하고, 만화나 잡지 등을 좋아하는 일본 청소년들에게
통신망으로 각종 기독교 상담 등의 멋진 홈페이지를 열어주는 것과, 만화로 된 각종 전도지 및 청소년의
관심과 필요에 답을 줄 수 있는신앙문서의 개발, 다양한 전도지들이 필요하다.
셋째, 교회의 원형이며 최소단위인 가정교회를 일으키는 사역을 해야
한다. 일본에서의 남성들은 가정보다 직장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직장에서 인간관계와 과로에 시달리는 샐러리맨들은 가정을 잘 돌보는 것이 불가능하다.또 집안일이나
자녀양육, 아니면 맞벌이와 사회참여로 인하여 과로에 지친 아내 역시 남편에게 잘 봉사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가정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부부관계의 갈등, 자녀교육문제의 갈등 등으로 고통당하는 이웃에 교회가 해답을 주어야 한다. 행복한
가정을 세워주는 사역은 앞으로 교회가 해야하는 중요한 영역이 될 것이다.
제임스 답슨이 시작한 가정사역(Focus On the Family)과
데니스 레이니가 시작한 가정생활(Family-Life)운동은 작은 출발이었지만 수년전부터 일본교회성장과
전도와 가정상담 등에 큰 도움을 줄 사역이 되리라 믿는다.
최근 남성의 지도력을 회복하자는 프라미스키퍼(Promise Keeper)운동이
일본교회에 소개되고 있어서 크게 기대가 되고 있다. 바람을 피우는 불륜문제, 이혼문제: 성의 상품화 문제, 혼전
성교문제, 청소년 성범죄문제 등 가정이 견고하지 못한 데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이 교회 안에서 해결되고
치유되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리라 믿는다.
넷째, 획기적인 총동원전도운동, 일본전민족구령운동이
일어나야한다. 과거 일본개신교회에 전도의 희망과 꿈을 키워준 연합전도운동들이 있었다. 오끼나와의 '나는 찾았네(I
FOU-ND IT)' 운동, 관서지방의 고시엔 미션, 일본
전역에서의 빌리그래함 크루세이드 운동 등은 복음주의교회들이 많은 기도와 함께 전략적으로 믿음의 총력전도활동을 전개한 것이다.
그 결과 눈에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교회를 성장시키는 동기가 됐다. 뭉치기를
잘하고, 또 좋아하는 일본민족의 특별한 기질이 이제는 교회 안에서 본을 보일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한국교회가 급격히 성장하는 배경에는 여의도에서의 몸부림치는 성도들의 기도와 전도운동이 있었던 것을 무시할 수
없는데, 일본의 복음주의교회뿐만이 아니라 모든 그룹이 총동원된 획기적인 전도운동이 한번쯤은 꼭 필요하다.
다행히도 지난 6월초 일본복음동맹(JFA)은
총회에서 성탄 2천년을 맞이하는 AD 2천년에 일본전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운동과 함께 제4차전도회의를 오끼나와에서 열기로 하고,
55개 교단교회와 39개 선교단체에서 실행위원회를 구성하여 이 운동을 추진하기로 결의하였다. 바라기는 모든 국민들의 관심사가 될 21세기를 맞이하는 성탄 2천년에 일본 전교회가 궐기해 로고마크와 테마송을 만들고, 매스미디어를
총동원하고, 또 모든 신자들은 개인전도 훈련을 받아 전도지를 돌리고 간증과 함께 일본 전도시를 뒤집어놓는
성령폭발,전도폭발이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마지막으로 한국교회와 전세계교회들에게 호소하고 싶은 것은 2천년을
전후하여 일본교회를 돕고, 일본민족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 중보 기도운동과 함께 구체적으로 일본사람을
전도하는 러브저팬(LOVE JAPAN)운동을 일으켜주기를 부탁한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일본이 영적으로 축복을 받아 과거에 수많은 상처를 입혔던 지구촌에서 하나님나라를 위해 공헌하는 민족이 되도록 하자.
단 3일이든, 1주일이든, 한달이든 1년이든 일본에 올 기회를 만들어 일본교회와 함께 전도하고
기도하는 캠페인을 벌이자.
일본인은 특히 과거로부터 대한민국을 통해 대륙의 문화를 수입하고 배워서 자기들의 것으로 꽃을 피웠다. 한반도를 거쳐서 들어온 것은 모두 번창했다. 앞으로 남은 것은 경제도, 교육의 힘도 아니고 생명력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수한 구원의 복음인 것이다.
일본선교는 결코 어렵거나 구미선진국교회와 선교사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과거에 가장 가까운
이웃형제였고 동일문화(한자문화)권에서 오랜 교류와 친밀감을
가졌던 우리 대한민국교회의 첫번째 선교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