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선교전략3
엄기영, 김용국, 이요나, 신 헌, 이상노
일본은 있다, 없다. 일본을
배워서는 안된다, 된다는 상반된 입장의 한국서적들을 보면서 한마디로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어떤 것이 맞고 어떤 것이 틀리다고 말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애매한 나라, 그것이
바로 일본이 아닌가싶다. 그래서 199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에 켄자부로의 글 중 “애매한 일본인과 나”라는 책의 제목처럼
애매한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합한 말인 것 같다.
세가지, 잘못된 정보
벌써 6년 전이 되어가는 1991년, 일본을 향해 떠날 때 가졌던 일본에 대한 지식 가운데 시간이 지나면서 필자는
3가지 잘못된 정보를 가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째는 일본사람들은 소식(小食)한다는
것이었다. 흔히 한국에서는 일본사람들은 식사량이 적다는 것을 상식처럼 알고 있고 있다. 물론 건강을 위해서 현미와 채소를 고집하는 사람들처럼 식사량을 조절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한국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현재 일본사람들의 식사량은
절대로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일본사람도
밥을 많이 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둘째는 일본선교를 이야기할 때, 일본을 8백만 우상의 나라라고 알았던 것이다. 일본사람들은 세계 어느 나라사람들보다
종교성이 많은 사람들이다. 사면이 바다이고, 화산과 지진, 그리고 태풍등 천재지변이 자주 일어나는 지역적 특성때문에 많은 범신론적 다신교 종교성이 강해왔다. 그러나 8백만 우상의 나라라는 표현은 일본의 신이 8백만 정도 된다는 숫자적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일본어 표현으로 '야오요로즈(八百万)'는
표면적으로는 8백만이라는 의미이지만, 그러나 이 말은 관용어적인
표현으로 많다라는 의미로 사용할 때 쓰는 말이다. 마치 백만장자라는 말은 돈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듯이
단순히 많다는 뜻이다. 도리어 일본의 우상의 수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8천 만도 넘을 수 있다.
셋째는 한국교회가 양적인 면에서는 크지만 질적인 면으로는 일본교회가 더 우세하다는 말이었다. 우찌무라 간조 혹은 미우라아야코 등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세계적인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이 있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일본교회를 볼 때 질적인 면에서도 한국교회보다 훨씬 성숙하닥 볼 수 없다.
한가지 예로 일본문화와 국민성이 만들어낸 친절과 질서의식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삶의 능력과 인격적 변화와는
관계없는 것이다. 일본교회 안에서의 신앙의 성숙과 성령의 역사가 일본교회의 내면적 성숙과 삶과 인격을
변화시키는 능력으로는 잘 드러나고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성장과 부흥이 더딘 이유
일본교회의 성장과 부흥이 더딘 가장 큰 이유는 일반적으로 일본 교회가 기도와 전도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강하다. 물론 일본교회 성도들이 전도를 잘하지 못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첫째,일본은 철저하게 집단중심적 사고를 갖고 있다. 이질감을 일으켜 집단성의 일치를 저해할 수 있는 것은 함부로 드러내거나 주장해서는 안되는 문화이다. 그런 면에서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애(겉표현)라는 일본의 독특성은 결코 나쁜 이중적 마음은
아니다. 상대와 배타적 이질감을 갖지 않으려는 심리적 노력, 집단적
화(和)를 이루려는 노력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 어느 누구나 인간이라면 죄성으로 인한 양면의 이중적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일본사람들이 더 악한 양면성을 지닌 것으로 단정해서는 안될 것 같다.
이런 집단중심적 사고는 직장 회사, 어떤 집단에서 자기와 다른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기독교를 강요하는 것은 실례이며, 집단성을 거스르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종교는 내면적으로 혼자 조용히 믿는 것이지, 강요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ꠐ
그러므로 생명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무례한 사람으로 취급되고 집단성을 파괴하는 자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가족과
민족을 사랑하기에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적절한 지혜와 이런 문화에 대한 담대한 용기가 얼마나 필요한지 모른다.
그런데 바로 이것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교회가 흔치 않은 것 같다. 일본인의 문화와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열정을 갖고 복음을 전하는 일본 교회들이 적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선교사와 선교역사에 비해 크리스천이 아직도 전 인구의 0.25퍼센트를 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과의 훌륭한 수직적
관계가 있는 우찌무라 간조가 왜 무교회주의적 성향을 갖게 되었는지는 이런 일본인들의 집단성을 중시하는 성향에서도 해석되어질 수 있다고 하겠다.
둘째, 일본인들의 범신론적 종교성은 태어나면서부터 신도과 관계를 갖게
되고, 결혼식은 교회에서, 장례식은 절에서 행하는 것을 통해
드러난다. 일본인들에게서 신이란, 단순히 복을 주며 재앙을
지켜주는 우월한 막연한 존재이다. 그리고 어떤 신에 대해서도 그 신의 근원적인 면을 깊게 생각하려 하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가장 큰 서점 중의
하나인 키노구니야에 가보면, 종교에 관련된 서적이 다른 서적에 비해 매우 적다는 점에서 그것을 입증해주고
있다.
신도의 영향 아래 있는 일본인들의 죄에 대한 의식은 구체적인 행위에 대한 인식이기보다는 추상적인 더러움(예,출산은 부정한것)이며, 좀 더 깊게는 집단이나 다른 사람에게 대한 상대적인 죄의식으로서 어떤 폐를 끼치는게 아닌가에 있다. 죄에 대한 이같은 인식은 분명 복음을 전하기에는 넘어야 할 어려운 고비이다.
인간의 지혜와 말로는 할 수 없는 것으로 성령의 능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른다.
셋째, 제2차 대전을 일으키면서
당시 군부세력들은 이런 일본인들의 집단성을 천황을 중심으로 모으고, 그를 신격화시키는 것으로 이용하게
된다. 그 당시 요구되는 신사참배에 일본교단들이 어떻게 그렇게도 빨리 동의하고 한국교회까지 강요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면서, 일본은 모든 신을 카미사마(神樣)라는 똑같은 단어로 쓰고 있고, 성경이 말씀하는 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다는 결론을 일본기독교회가 갖게 되었다.
그 결과 2차대전을 같이 치루었던 독일의 관념론적인 조직신학과 패전이후
서구의 인본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으면서, 오늘날 잘못된 기독교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게 했다. 즉 하나님에 대한 조직신학적 정리는 깊게 형성되었지만, 그 하나님은
사진들에 갇혀있는 초상화와 같았다. 그래서 지금 성도들의 삶속에서 살아서 역사하시며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많이 경험하지 못하게 되었고, 또 당시 전쟁고아와 가난한 자들을 돕고 섬기는 자선적 행위가 복음의 생명력과
능력을 알지 못한 기독교의 절대적 모습처럼 오해하게 했던 것이다.
결국 골리앗같은 거대한 일본문화를 지배하는 인간관계에 대한 집단성의식과 기독교는 서양종교로서 믿기보다는 배우는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 그리고 삶 속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게 된 관념론적 신지식, 물질적으로 풍성해진 일본에 선교사와 기독교는 그렇게 필요성을 자극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되어지는 사회윤리적 기독교등
기독교에 대한 이같은 잘못된 선입관은 복음을 전하기에 어렵고 일본교회가 성장하지 못하게 된 이유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미래가 불안한 일본인
몇년 전, 조선일보와 아사히신문이 공동으로 조사한 앙케이트 발표에
의하면, 2천년대의 한국은 75퍼센트가 밝고 긍정적이라고
대답한 반면, 일본은 75퍼센트가 현상유지나 부정적인 대답을
했다는 기사를 읽은적이 있다.
현재 일본은 여러가지 면에서 방향성을 잃어버린 채, 21세기를 맞이해야
한다는 불안을 갖고 있다. 엄연한 민주주의 국가요, 자본주의
국가체제 속에서 경제대국임을 자랑하지만, 일본에서 살면 살수록 세계에서 가장 불쌍한사람들이 일본인이
아닌가 느껴진다.
첫째, 일본은 패전후,정신적
지주, 기반을 잃어버린 채 흘러가고 있다. 특정한 마음의
신을 중심으로 결집되는 민족성은 위에서 말했듯이 천황을 중심으로 일본사람들을 하나로 묶어놓았다. 패전이후, 신격화되어진 천황은 그래도 일본인들의 마음과 정신을 지배하는 힘이었다. 그러나 8년 전 쇼와(昭和)가
죽고 헤세(平成)가 들어서면서 이제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천황실은
비록 극존칭의 표현을 쓰고 매스컴들이 이야기한다 해도 평범한 일본사람들의 호기심을 채우는 연예가 소식의 한 부분처럼 여겨질 뿐이다. 뚜렷한 정신적 기반과 뿌리가 없는 나라, 삶의 긍정적, 바른 철학을 가지지 못한 나라, 그렇기에 철저히 현실적인 나라, 현실적인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둘째, 일본회사들의 기업운영의 체제가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일본회사들이 이른바 거품경제 때문에 세계에 자랑해오던 종신고용제를 무너뜨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현상은 특히 일본 중년층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다. 한국의 감원조치나
명예퇴직, 권고사직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일본 사회에 하나의 충격이 되며,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일본사람들은 집단성의 성향으로 자신이 속한 회사와 더불어 운명공동체적 성격을 갖고 있다. 자신이나 정부가 자신과 처자식을 책임져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일하고 있는 회사가 책임져주는 것이기에 직장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은 사형선고와 같은 것으로 집단에서부터 제외될 수 있다는, 즉 이제 회사가 자신을버릴
수 있다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이로 인한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셋째, 경제대국으로서 일본은 세계정상국가들 속에 리더십을 발휘해야하는
위치가 주어졌지만, 창조성과리더십을 키워주는 문화나 교육이 부재한 가운데 경제성장을 이룬 일본은 어떻게
현재의 지구촌을 끌어안고 함께 21세기를 맞이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는 형편이다. 못하는
2차대전 후 일본은 미국을 부러워하며 미국의 등만을 보고 열심히 열심히
달리다보니 어떤 면에서는 미국을 앞질렀고, 미국과 동등하게 책임을 져야하는 입장이 되었다. 그러나 창조성과 리더십을 배우지 못한 일본은 현실적 이익을 계산할 뿐, 어떻게
지구촌의 책임있는 나라로 서야 할 지를 알지 못하는 방향성의 상실 속에 있는 것이다.
한국인을 통한 선교를 기다리는 땅
이같은 일본의 현재적 정황에서 선교사들이 지금 일본에서 사역하는 방향은 크게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일본교회 개척, 둘째, 일본교회에서의 사역자 혹은 전문 협력사역, 셋째, 한국어 예배를 통한 일본선교이다.
일본교회 개척사역은 대체로 이렇다. 선교사가 어떤 지역에 들어가서
자신의 집을 거점으로 교회를 개척해 10년, 15년이 지나면서 30-40명의 출석교인으로 성장하면, 그 뒤 일본사역자에게 그 교회를
이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교사는 또다른 개척사역을 찾아간다.
또한 협력사역의 경우, 크고 작은 일본교단 안에 속한 교회에서 들어가
부교역자로 사역하거나, 이 교단에 속한 작은 교회에 교단의 허락 아래 담임목회자로 사역하는 것이다. 또 일본교회의 지도자나 성도들의 교회성장과 신앙성장을 돕는 전문사역 혹은 협력사역의 길도 있다.
이와같은 사역은 일본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의 푸른계절이 올 때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중요하고도 전통적인
선교사역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최근에는 점점 늘어나는 유학생이나 주재원들을 통한 일본선교의
열매들이 맺어지면서, 한국어예배를 통한 일본선교의 전력이 부각되고 있다.
필자가 선교훈련을 받았던 1990년만해도 선교지문화권을 따른Ml, M2, M3으로 분류했지만, 세계가 일일문화귄으로 점점 좁혀지면서, 선교정책에 있어서도 이러한 구분은 점점 희박해져가고 있는 것 같다. 특별히
역사적 여러 이유 등으로 곳곳에 흩어진 한 민족과 70년대 이후 이민,
해외파견근무 등으로 세계속에 넓혀진 한국사람들의 신앙의 열정은 모이면 교회를 이루고 더 나아가 현지 한인교회를 통해 선교의 접촉점을
갖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폭넓은 선교정책과 전략을 생각하게 되었다. 실제적으로 일본 동경에 있는 D교회나 Y교회는 1,000명
가량이 모이는 한인교회로서 일본에 있는 한국사람들의 영혼구령과 신앙양육뿐만 아니라, 100내지 150명이 넘는 일본인 예배부를 운영함으로써 일본선교에도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최근 100명 200정도
되는 한국인교회에도 2-30명의 일본인들이 출석하고 있는 것들을 볼 때, 일본선교만이 지니는 독특한 선교적 현상이 아닌가 싶다. 이런 점에서
일본교회 개척사역과 더불어 한인 주재원과 유학생을 통한 일본선교는 또다른 선교전략의 가능성을 갖게 해주고 있다.
미전도부족에 대한 선교사역이 집중되고 있는 오늘날의 선교에서 마치 자동차 백미러의 사각지대처럼 선교가 어려운
나라로 간주되어 단순한 부담만 느끼면서 그 영적 심각성을 잊어버리고 외면되어진 영적 사각지대인 일본, 그러나
일본 또한 선교 퍼센트면에서 볼 때에도 미전도 부족만큼 비복음화되어진 나라임에 틀림없다.
필자는 선교사로서 4명의 일본교역자와 250여명이 되는 일본교회에서 함께 사역하면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일본선교는
한국교회가 책임져야 한다' 는 생각이 더 강해진다. 서구선교사보다도
한국선교사가 훨씬 문화적, 언어적인 면에서 빨리 적응한다는 점 때문만이 아니다. 역사적인 상처와 아픔을 갖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 그동안 한국교회에 주신 영적 축복과 성장을 통해 '용서할 수 없는 나라 일본'을 끌어안을 수 있는, 그래서 한일간의 민족적 감정을 뛰어넘어 예수의 용서와 화해가 선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픔의 역사를 넘어 함께 하나님왕국의 백성으로 세워져가느냐 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성숙도를 보여줄 수 있는 저울이기도
할 것이며,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일본복음선교회(이하,JEM)는 90년대 한국교회 안에서 일본선교에 부름받은 사역자들로부터 시작됐다. 한국교회의
일본선교를 협력, 지원하고 일본선교를 위한 중보기도운동을 한국교회 안에 일으키고,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일본선교를 위해 사역하는 성경의 모든 영감과 권위를 신뢰하는 복음주의적인 초교파 선교단체이다.
중보기도를 시작했는데
9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교회는 이웃나라 일본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때 많은 젊은이들이 일본단기 사역에 나섰고 적지 않은 선교헌신자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일본은 복음화율이 0.41퍼센트로 생각보다는 일본이 영적으로
훨씬 심각했고 가장 복음을 필요로 하는 국가임을 알게 됐다. 게다가 천황제, 신사참배, 우상숭배, 물질만능주의, 가치관의 혼동으로 영적 황무지인 상황이었다. 그리고 일본은 중소도시의 70퍼센트 지역에 교회가 전혀 세워져있지 않은 가장 선교가 필요한 대규모 미전도종족이 존재하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구체적인 일본선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물질적으로
부자나라인데다 과거 역사에서 우리에게 남긴 상처들이 아직은 일본선교를 머뭇거리게 하는 장애물로 남아있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일본을 분명히 지목해주셨고 일본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게 하셨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일본선교를 위한 정보제공이나 선교지를 잇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는 단체가 없었다.
처음에는 이러한 헌신자들로 시작되어 차츰 초교파적으로 일본을 위해 기도하며 중보하는 모임으로 발전해 나갔다. 그리고 JEM은 일본의 모든 선교사들의 영적 사역을 후원하고 선교사들의
화합과 일치를 가장중요한사역의 목적으로 삼았다. 일본선교사들이 너무나 어려운 영적 전투장에서 사역하고
있고 여기에 기도의 부담을 가진 것이 JEM 사역자들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마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열악한 선교지 일본을 복음화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기도가 뒷받침된 성령의 강한 역사가 있어야 하며 일본에
강력한 성령의 역사들을 일으키겠다는 사역자들의 마음도 주요 설립 배경이 되었다. “오늘은 일본 내일은
세계”라는 표어 아래 '일본의 미전도 지역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을 중요한 선교전략으로 삼고 있다. 오늘날의 전세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일본을 복음화하는 일은 곧 세계선교와 직결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교회에 효과적으로 일본선교의 필요성을 홍보하고 선교전략을 제시하기 위하여 선교연합 운동을 일으키며, 선교사역을
지워한다는 것도 JEM 설립의 주요한 배경이 되었다.
일본선교를 위한 모든 것을 지원한다.
처음부터 선교사 파송단체로 출발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일본선교
전문 파송단체기관으로 사역하게 되었다. 부설기관으로 일본선교훈련원(MJTC)과
선교일어 연수원(MJLS).그리고 동경선교훈련원(MJTT)과
일본선교연구소(MJRI)가 있다. 96년 7월 현재 파송사역자는 15명(선교사 8명, 간사 7명)이다.
우선 일본선교연합세미나를 연다. 한국교회안에 있는 선교헌신자들에게
바람직한 선교의 대안의 제시하고 일본선교를 위한 정보제공 및 선교전략 수립을 위해 매달 실시되는 사역이다.
일본선교훈련원을 운영한다. 선교헌신자들을 훈련, 육성하여 보내는 또는 가는 선교사로 훈련하기 위한 기초단계의 훈련으로 일본선교의 오리엔테이션 과정이다.
선교일어연수원이 있다. 언어는 단기간에 습득이 이루어 지는것이 아니므로
국내에서부터 효과적인 언어훈련이 이루어 지도록하고 있다.
다음으로 미션재팬사역을 꼽을 수 있다.‘96미션재팬’으로 명명된 이 사역은 매년 8,15광복절 기념으로 개최되는데, 일본의 주요도시(거점선교전략)들을
순회하며 선교전략을 수립하고 선교관심자들에게 선교에로의 도전 및 헌신의 기회를 제공한다. 또 이 기간중에
갖는 선교대회는 한일교회의 지도자들과 한일간의 선교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기회로 제공되고 있다.
문서사역도 중요한 부분이다. 월간으로「미션재팬」지를 발간하여 국내에는
일본선교의 정보를 제공하고 선교지에서는 선교사들간의 연합과 일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또 일본선교연구소가 있는데, 구체적인 활동을 위한 기초 자료마련 등
준비단계에 있다. 오는 9월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한국교회에
일본선교의 정보제공과 선교전략들을 제공하는 선교부설기관으로 사역하게 된다. 그리고 선교사의 발굴, 육성, 훈련, 파송 등의
사역을 돕거나 적당한 단계에서 타단체를 소개하기도 한다.
한편 동경선교훈련원을 두고 있는데, 일본현지에서 타문화권 언어 및
선교훈련을 실시하는 기관이다. 1997년 4월 개원되었다. 마지막으로 ‘여호수아 재팬
2002’프로젝트가 있다. 매년 겨울 일본의 미전도지역을 탐사하는 선교정탐사역이다.
일본인 교회 개척을 목표로
JEM은 사역의 중요 포인트를 일본의 목회자가 없는 교회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미전도지역에 교회를 설립하는 데 두고 있으며,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선교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첫째,미전도지역에 교회 개척하는 것이다. 일본 전지역의 68퍼센트나 되는 미전도지에 주님의 교회를 개척하는
데에 중점을 두는 전략이다.
둘째, 현지인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선교의 최종적인 목표를 현지인 스스로 자국의 복음화의 일꾼이 되도록 돕는 것에 두고 있는 전략이다.
셋째, 제자훈련이다. “선교사는
떠나더라도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남도록 한다”는 정신에 따라 제자훈련에 대한 분명한 프로그램을 준비하여
목회자 및 평신도들이 충실한 주님의 제자로 양육되도록 하는 전략이다.
넷째, 현지 교회와 한국교회의 자매결연이다. 한국교회와 일본교회의 교류증대를 통해 일본교회가 부흥되도록 자매결연을 적극 추진하는 전략이다.
여섯째, 일본교회와의 협력이다. 일본인
사역자들의 영적 부족함을 보충해주고 그 교회의 일원이나 지도자가 되어 섬기는 사역에 중점을 두는 전략이다.
일곱째, 현지 지도자 초청사역이다.
일본인 목회자 및 평신도들을 초청하여 한국에서 세미나 및 훈련프로그램을 통하여 현지 지도자를 한국에서 육성한다는 선교 전략이다.
복음 전략으로 다가간다.
이같은 선교사역을 위해 JEM은 주요 사역정신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첫째, 협력정신이다. 일본선교는
선교사 및 교단, 선교단체, 교회가 협력하여 사역해야 그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정신이다.
둘째, 성령정신이다. 어떠한
이론보다도 실제 사역현장에서 기도가 뒷받침된 성령의 능력에 의한 사역을 중요시하는 성령에 의한 사역정신이다.
셋째, 복음정신이다. 말씀만이
한 영혼을 진정한 진리에 이르게 한다는 복음주의적인 입장에서 모든 사역을 진행시킨다는 복음주의 정신이다.
넷째, 기도정신이다. 일본의
복음화는 기독만이가장 확실한 열쇠라는 확신을 갖고 초교파적으로 중보기도 사역을 진행시켜 나간다는 기도 정신이다.
다섯째, 전문인 정신이다. 정규신학교를
졸업한 목회자에 의한 선교사역을 중요시 하면서도 평신도에 의한 전문인사역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전문인 사역정신이다.
이같은 정신으로 JEM은 선교의 기본정책을 세웠다. 먼저 기존 선교단체와 교회 그리고 사역자들을 신뢰하고 지원하며 협력한다는 것이다. 또 교회와는 선교의 동역자로서 협력하며 JEM의 모든 사역자들은
개교회에서 성실하게 봉사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그리고 본 선교회의 재정은 철저하게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
선교를 원칙으로 하되 지역교회나 성도들을 통한 헌금으로 운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갈보리채플은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따라 개교회의 선교전략을 수립하는 공동체 이다. 갈보리 채플은 원래 미국 코스타메사의 갈보리채플(척 스미스 목사)에서 시작됐다. 갈보리채플은 말씀과 성령 안에서 준비된 크리스천들이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고 소명을 받아 인도하심을 따라 사역지에 나가도록 한다.
그리고 선교지에서 모든 형식을 탈피하고 오직 사랑 안에서 성경전체를 통한 말씀을 가르치는 일과 새로운 노래와
시대적 감각속에 드려지는 소그룹 예배로 출발하여 교회를 개척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마침내는
성장된 개교회들이 또 하나의 예루살렘적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 관계를 사도행전 1장8절에
비유해본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즉 예루살렘은 미국 코스타메사 갈보리채플(30년전 척스미스 목사 창설),유대는 미국 샌디에고 호라이즌채플(20년전 마이크 멕킨토시목사 개척),사마리아는 동경호라이즌채플(7년전 히라노 코오이찌 목사 개척),땅끝은 서울갈보리채플(3년간 이 요나목사 개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같은 영적인 수직적 구조속에서, 동경호라이즌채플의 예루살렘은
샌디에고 갈보리채플이 되고 동경호라이즌은 서울갈보리채플의 예루살렘이 된다. 결국 그들의 제자들에 의하여
땅끝까지 이르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시작된 갈보리채플의 선교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계획에
의하여 사역자를 준비하시고 보내시고 함께 사역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소명으로 시작돼
갈보리채플의 일본선교는 10년 전부터 일본선교에 비전을 가진 준비된
사람들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그 성공적 예로 일본인 목회자로서 일본성서대학을 나와 미국에서 신학과정을
마치고 그곳에서 17년간 목회를 하던 히라노고이찌목사(동경
호라이즌채플 담임)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고 갈보리채플에 동참한 것이다. 그는 귀국한 뒤 가정사역 중심, 청소년 중심으로 강해설교식 성경공부와
새로운 교회음악에 비중을 두고 목회했다.
히라노 목사는 일본교계의 새로운 예수혁명운동의 활성화를 위하여 개척후 몇 년간 척 스미스목사를 비롯한 갈보리채플의
젊은 목사와 음악사역자들을 초청, 목회자세미나 및 청년선교대회 등을 개최했다. 동시에 책자 번역을 통하여 일본의 목회자들과 젊은 크리스천을 일깨워 새로운 비전을 심어주기 시작했다. 300명의 성도로 급속히 성장한 동경호라이즌채플은 침체된 일본 교계에 지대한 충격과 관심이 되었다.
이 같은 영향들로 지금까지 교리와 교단 중심의 신학적 연결고리 속에서 교회성장을 위한 목회에 치중하던 일본교회는
젊은 목회자들의 자유로운 미국여행을 통해 미국 갈보리채플을 체험하게 되었고, 그들은 신학적 사상을 초월하여
개교회 중심으로 새로운 교회문화를 적용하기 시작하였다.
그후 많은 일본의 젊은 크리스천들이 코스타메사 갈보리채플에서 운영하는 성경대학(CCBC)에
유학하여 성경전체를 배우고 돌아와 자기의 생활권 속에서 가족을 중심으로 성경공부를 시작함으로써 갈보리채플을 개척하게 되었다. 지금은 현재 동경 근교에만 6개의 갈보리채플이 개척되어 소그룹 중심의
성경공부를 하고 있다.
소그룹 성경공부로 파고들어
서울갈보리채플에서’94년도에 개설한 일본선교 헌신자 연수원을 졸업한 4명의 남녀 선교사(주성식 목사- 동경, 장청익 전도사 - 고베, 임순옥
전도사- 센다이)들이 파송되어 각자의 생활 연고를 갖고 성경공부를
중심으로 한 갈보리채플 한인교회 개척을 위한 기도모임을 갖고 있다. 또한 이들은 일본에서 갈보리채플을
개척하는 일 외에 교파를 초월하여 기존 교회에 동참하여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통하여 봉사함으로써 교회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초현대적 물질 문명 속에 급속도로 변모하고 있는 일본의 교회는 점점 교단 중심에서 개교회 중심으로 발전되어 싱가폴
등지에서 이미 열매를 맺고 있는 소그룹교회가 확산 일로에 있다. 일반적인 설교중심의 교회에서 소연회장이나
레스토랑 등의 자유로운 문화 공간에서 홈 테이블식 성경공부와 찬양집회 중심으로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고리도전서 14장 26절에 기록된 영적 참예배를 실현시키고 있다.
영적 참 예배 운동 힘써
한편 갈보리채플은 이러한 자유스러운 목회 분위기 속에서도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비성경적 교회 문화에 조심스럽게
대처한다. 이를 위해 전세계 갈보리채플의 네트워크를 통한 긴밀한 공조 속에서 갈보리채플 인터넷을 통한
말씀교육과 정보제공은 물론 문화, 예술, 비지니스, 활동 등을 통한 코이노니아를 갖고 있다. 또한 수평적 측면에서 전세계
갈보리채플의 복음전도자들로 구성된 전도자, 교사, 음악 사역자들이
수시로 일본을 순회하면서 ‘영적 참예배로의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일본을 그리스도께, 훗카이도에서 오끼나와까지, 1억2천3백만 일본민족복음화, 70만 재일한국인의 영적 출애굽, 아시아선교의 전진기지구축, 성결운동의 한국으로의 역수출‥‥.
일본복음화의 결성
사업도중부도로 도피 겸 패션디자인 공부를 목적으로 일본에 유학하던 중, 묵고
있던 숙소에서 화재가 발생, 일본인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것이 일본 영혼을 위한 헌신의 계기가 되었던
민대기 선교사(현,M.J.D 대표선교사).
미국으로의 유학이 좌절되자 일본에서나마 학업을 계속하려고 밤엔 수도공사 현장에서 땅파는 노동으로 학비를 벌며
어렵게 와세다대학원 재학중이던 박영석 간사(현, 일본대표간사).
돈벌어 출세해보려고 회사주재원으로 일본을 택했던 필자는 동경의 한 한인교회에서의 만남을 계기로 일본복음화를 위해
자비량 선교사로서의 길을 내딛었다.
가진 것이라곤 기타 한 대와 몇 명 안되는 소수의 무리가 전부였다.
우에노 찬양은 영적 부흥의 동기
기타 한 대를 가지고 우에노역 앞에서 찬양전도를 시작했다. 비가 내리던
어느날 뿌린 전도지를 행인들이 버려 지저분하게 되자 역관리인이 제제를 가했다. 밀려난 우리는 공원 안으로
들어가 찬양연습을 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저녁 늦은 시간이었다. 찬양연습이
끝날 무렵 정리하고 일어서려는 순간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을 살펴보니 열댓 명이 박수를 치며 앵콜을
외쳐 댔다. 일본인들이었다. 주변위치를 살펴보니 신사 앞이었다.
순간 찬양전도의 필요성을 직감했다. 가라오케를 좋아하는 일본인들, 특히 젊은이들 속에 음악을 통한 찬양사역은 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공원 안에 동물원이 있었기에 초창기에는 동물들이 놀랜다고 경찰의 감시를 피해야 했지만, 매주 토요일 거의 빠짐없이 진행해왔다. 어느때엔 잠시쉴 때면 왜
안하느냐고 용기를 주는 경찰도 있었다.
이것을 기점으로 주일만 되면 보행자 천국(?)이 되는 요요기올림픽경기장
옆인 하라주꾸 공원 앞거리에서도 주일예배 후 찬양사역을 하게되었다.
100여개 이상의 펑크족 음악가들이 폭발할것만 같은 음악과 선율로
굉음을 내며 연주하는 하라주꾸 공원 안, 한쪽 모퉁이에서 부르는 찬양은 호소력이 없어보였지만 그럼에도
일본에 영적 부흥을 태우는 중요한 동기가 되어갔다.
찬양사역과 함께 어떻게 일본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 기도하며 방법을 찾아 갔다. 일본은 동네 시장 안에도 많은 아마추어 야구팀이 있을 정도로 야구를 좋아한다.
그래서 스포츠선교를 적용해보기로 하고 유니폼도 맞추고 동네 친선게임을 위해 하라주꾸 찬양사역 후 2시간
정도씩 연습도 하고 시합도 했다. 또 축구팀도 만들어 어떻게 해서라도 그들의 생활속에서 들어가려 했다.
기도와 찬양으로 일본땅을 밟는 것 자체도 매우 중요안 영적 작업이다. 일본
하라쥬꾸 공원에서 펼쳐지는 노방전도 모습.
그들과 융화되는 삶이 없는 “회개하라 예수믿으라”는 말과 전단지만으로는 저들의 마음에 오히려 거부감만 안겨주었다. 아직도
대다수의 일본인들에게 있어 한국을 포함, 식민지였던 아시아 국민들은 외국인이 아니었다. 마치 우리나라에 온 방글라에시안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보다 더 심할지도 모른다. 그런 한국인이 예수를 믿으라는 것 조차도 그들에게는 기분상할 일이다.
그 나라 현지인을 중심으로 이름을 내게 하여 우리는 뒤에서 지원하고 현지인이 복음을 전할 때 진정한 복음전파가
되지 않을까 한다(현세계 도처에 한국인 이름을 앞세워 선교하려 할 때의 많은 문제와 마찰을 보곤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지인의 양성이 중요하고, 그 바탕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선교부에서 개척한 동경고엔지교회(일본교회)는 작은 교회이지만 이제 자립단계에 와 있고 일본인 목회자를 초빙중에 있다. 현지인에게
주고 나와 제이, 제삼의 일본교회를 세우고 다시 그들에게 맡기며 뒤에서 지원하려고 한다.
자비량선교의 터전을 세우다
모일 공간이 없어 시간당 천엔하는 일본어학교 교실을 빌려가며 회칙을 만들고 선교전략들을 세워나갔다.
선교금을 후원하는 측과 현지에서 사역하는 측의 분리됨으로 인한 한계를 탈피하기 위해 일하며 선교하고, 선교하며 일하는 사도 바울과 같은 전천후 자비량선교를 지향하고 재정을 자립하기로 했다.
재정마련을 위해 자금을 거두었다. 중고 미니트럭을 두 대 구입하여
꽃을 팔기 시작했다. 신주꾸, 아카사카, 우에노, 긴자 등은 많은 한국여성들이 윤락업을 하는 곳이다. 일본에서 꽃장사 치고는 매상이 좋은 곳이다. 재정자립을 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우리는 기쁘고 감격스러웠다.
그러나 그 감격은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야쿠자들이 와서 지역 할당료를
내라고 위협하고 귀찮케 했다. 또 장사하기에는 영적으로 좋지않음도 느꼈다. 어떤 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 생각했다.
16세기 배가 닿는 곳마다 선교사들을 파송했듯이 20세기는 항공시대라 항공기가 닿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자 생각했다. 문화, 경제가 발전할수록 레포츠는 발전할 것이고, 또 우리보다 일본은 10-15년 여행문화가 앞서있고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사업이다. 그래서
비행기가 닿는 곳이면 어디나 직, 간접적으로 복음을 전하며 봉사하기로 하고 여행사를 설립했다. 그 외 건설, 무역, 컴퓨터업과
함께 그룹으로 키워갈 비전을가졌다.
처음엔 이렇다 할 노하우가 없었다. 선교사사모님이 여행사에서 아르바이트로
근무한 경력이 고작이었다. 헌신한 일본인 간사 두 명과 함께 현지법인을 만들었다. 이름은 일본에서 시작했으므로 ‘저팬(Japan),' 우리의 모계인 한국을 의미하기 위해 '코리아(Korea)', 그리고 세계로 가자는 비전으로 '월드Wor1d)'라는 글자를 생각했고, 그 앞자를 따서 'Ja-Ko & Wor1d(자코앤월드)'로 하기로 했다.
모두 감명의 눈물을 흘렸다. 일본에서 한국인이 자비량선교를 위해 법인을
만들었다는 것과 이 사역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쓰여질 것이라는 기대가 밀려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작은 아주 미약했다.
선교사님이 유학하며 아르바이트하던 중국집 주인 여집사님이 우리의 비전을 듣고 헌금한 비용에 모두들 헌금을 더하여
지금 사용하고 있는 동경고엔지 선교센타(현, 동경고엔지교회: 고엔지역에서 10분거리)를
반은 선교센타로, 반은 사무실로 사용했다. 시작한지 3개월 동안은 최소한의 노동의 대가 조차 기대할 수 없었다.
여행관련 업체들이 상대해주지도 않았고, 어쩌다 판매한 티켓은 실수로
변상해주기 바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후 본격적으로 영업과 팀을 갖추어 시작한 지 6개월 여만에 10여 년 이상 영업해온 교포가 운영하는 여행사를 압도할
정도로 신장해갔고, 지금은 일본 내에서도 한일노선의 경우 1위의
실적을 달성할 정도로 성장했다. 여행사를 설립한 이듬해 유학 등으로 귀국하는 지체들을 중심으로 한국에도
거점이 필요하여 여의도에 선교부를 세우고 자비량하기로하고 여행사를 설립했다.
한국에서는 여행업에 대한회의도 많이 들었지만 한국 여행업이야말로 우리가 개혁시켜야 되지 않을까 하는 사명으로
감당해오고 있다.
자코앤월드(여행: 일본), 자코앤월드(여행=한국)를 시작으로 계속해서 자코시스템(무역 ,건설: 일본),자코인터내셔날(무역:한국), 문서선교를
위한 트리플(도서출판:한국),
미국 선교부 설립(Mission of Jesus Disciple: M.J.D종교법인설립),자코&월드A.I.S(무역:미국) 그리고 '97년에
한국(자코시스템),일본(컴퓨터
뱅크),미국(자코컴퓨터)동시에
컴퓨터 매장을 오픈해 컴퓨터 유통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일본자코 경우 현지인을 고용하여 그들과 삶을 나누며 삶속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일본인, 아내가 한국인인 가정, 남편이
한국인인 가정, 재일교포 2,3세, 일제시대 때 탄광촌 인부로 한국에 왔던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해방후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일본인이면서도 한국에서
군대까지 갔다 온 청년, 조총련교포, 그리고 한국인들…. 모두 크리스천들로 구성된 자코멤버들이 오늘도 일본을 복음화하기 위하여 관념이 아닌 그들의 삶속에 섬기고 부대끼며
또 사랑하며 자비량현장을 일구고 있다.
부흥을 그리며 일본땅 돌기
1억2천3백만, 신도수 636,885명. 그 가운데 주일예배 출석수 0.022퍼센트(90년초 통계).아무리 훌륭한 신앙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흐름이 일본의
경향으로 바뀌면 그 사회에 순응하고 마는 민족성. 이따금 각 교단에 보고되는 일본선교의 사역 통계를
다 집계하면 일본은 아마도반 이상이 복음을 받아 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절망적일 정도로 때로는 포기하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닌, 그러나 긍휼히 여겨지는 영혼들 앞에 우리는 이런 표현을 써본다. 일본을 복음화 하기란 '계린(믿음)으로 바위(일본)를 치는
것과 같다"고‥‥
매년 여름, 겨울휴가를 통하여 오토캠프로 일본땅을 여리고성처럼 일본이
복음화 될 때까지 구석구석 돌며 찬양과 기도를 심기 시작해 1차에서
6차(훗카이도에서 오끼나와까지) 일본선교순례를
통해 일본의 곳곳에 새로운 영적 부흥을 직감해본다.
성탄절은 휴일이 아닌 반면 일본 천황생일인 12월 23일은 휴일인 일본에 성탄절을 알리기 위한 긴자 미쯔코시백화점 앞의 1주일
찬양전도를 통해서도 일본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하심 느끼곤 한다.
자비량선교로 세계를 품는다
자비량선교란 재정적 자립을 선언하며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가 함께 어울리고 노동하며 예수그리스도를 전하고 섬기는
것이다. 공산권이나, 중동지역 등은 선교부가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결혼한 가정 1-2가정을 중심으로 일로서(회사로)들어가 믿음의 단을 쌓고 사랑방운동을 하며 현지인들을 고용하여
자립하고, 사역중 재정에 시험들지 않고 자비량하도록 지원해주며 기초가 다져질 때 말씀사역을 담당할 한
가정이 같은 방법으로 들어가 팀사역을 감당하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 현재의 일본, 한국, 미국을
발판삼아 아시아 여러 사역지로 자비량 팀사역을 꿈꾸고 있다. 그래서 어느 독지가가 기증한 18만평의 불모의 땅(한국)에
가칭 '아시아청년훈련원' 을 건설하여 현지인 청년지도자들을
불러 영성, 자비량, 신학,
기술 등을 훈련시켜 그들나라로 재파송, 기존 사역자와 팀을 이루어 자비량선교를 이루어가는
꿈을 가지고 있다.
1억2천3백만 일본인의 영적 구원을 꿈꾼다. 또 70만 재일동포들이 에스겔골짜기의 뼈들처럼 영적으로 출애굽하는 것을 꿈꾼다. 그리하여
사회적 책임을 잘 감당하는 일본과 전도의 열정이 가득한 한국, 이 두 나라의 장점을 가지고 아시아를
공략할 꿈을 키우고 있다. 이같은 자비량선교를 통한 아시아와 세계선교는 가능하리라믿는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자를 용서하듯이
우리죄를 용서하여 주옵시고…" 우리가 주님께 용서받기 위하여 먼저 일본을 용서해야 한다. 예능교회가 일본선교에 발을 들여놓는 계기는 몇 년 전 고베지역 지진 때였다.
지진을 통해 들은 일본의 외침
뉴스를 통해서 지진의 참상을 듣던 날 때마침 선교위원회 헌신예배를 드리기로 하였고, 이날 선교보고시 일본고베에서 오신 미와노부오 목사(동부이촌동 카베난트
일본인 교회)을 통하여 그 참상을 실감나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고베에 있는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였고, 초대교회당시 안디옥교회가 로마 전지역에 기근이 일자유대에 있는
형제들을 도왔듯이 고베에 있는 성도와 교회를 위하여 특별 헌금을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예능교회에 일본선교의 사명을 특별하게 주셔서, 그후 오하시
목사(가가 중앙교회)를 우리 교회에 방문케 하셨다. 그리고 마치 예루살렘교회가 안디옥교회에 대하여 들었듯이 우리교회로 하여금 일본교회의 전반적인 상황과 성령운동에
대하여 알게 하셨다.
그후 일본선교를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갈보리교회에서 척 스미스 목사와 함께 목회하다가 6년 전 본국 일본으로 귀국하여 200명 교회로 성장시킨 히라노고이찌
목사(동경 호라이즌채플)가'96년 2월 예능교회를 방문하신 것이었다. 그분은 새벽기도를 인도하시면서
강단에서 무릎을 꿇으시고 지난 날을 용서하여 달라고 사죄를 하였다. 이때 우리 교인들은 모두 큰 감동을
받았고 이제껏 '일본은 아니야' 하던 두꺼운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히라노 목사님의 요청에 의해 자매결연 이야기가 나았고, 그분이 일본으로
가신 뒤 호라이즌채플로부터 예능교회와 자매결연하기로 결정하였다고 연락을 받았다. 이때부터 이미 성도들의
마음문이 열리면서 우리교회에 일본어성경강좌가 개설되었고, 성도들의 요청에 따라 일본어와 영어 동시통역예배가
시작됐다.
예수의 영이 일본으로 인도해
예능교회의 해외선교부에서는'95년 필리핀선교에 주력하여 그곳(이용돌 선교사)에 "왕들의
자녀"라는 학교를 짓는 데 힘을 쏟았다. 그리고'96년에는 몽골을 중점적으로 선교하고자 계획하여 8월부터 몽골을 방문하고자
하였으나, 동해안 북한잠수함사건이 나고 또 러시아에서 한국외교관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하여 공산권으로의
방문이 안전상 어렵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 우리교회는 사도행전의 역사를 체험했다. 사도행전 16장 7절에 “예수의
영이 허락치 아니하시는지라”와 같이 몽골로의 해외선교를 강권적으로 막으시고, 바울이 유럽선교에 부름 받았듯이 그해 우리교회는 일본으로 인도를 받아 9월 29일 일본의 동경호라이즌채플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3박4일간 우리 일행의 찬양과 성극 그리고 말씀과 간증은 우리를 일본성도들과 하나로 만들었고 눈물을 흘리며 서로 용서하는
은혜의 시간을 가졌다.
귀국 후 해외선교부에서 동경호라이즌채플의 부목사로 있는 주성식 목사를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교회 재정이 아닌 성도들의 기도와 정성들을 모아 돕게 하셨고, 우리 교회가 후원하는 선교사로 결정케 하셨다.
예수의 하나됨을 체험하다
올해 2월말 예능교회 21주년
기념예배 때에는 자매교회인 동경호라이즌채플에서 46명이나 되는 일본성도들이 방문하였고, 교회행사와 민박을 통하여 그들도 우리도 막힌 담이 허물어지고 하나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민박하기로 한 날이 독립운동기념일 3월 1일이어서 일본성도들이 고민 끝에 35명만 민박을 신청했다. 그런데 각 가정에서 일어난 사랑과 용서의 시간은 국경을 초월하여 성도가 하나로 되는 역사였다. 마치 요셉과 그 형제들의 만남처럼 말이다. 때문에 민박을 안하고
호텔에서 숙식한 일본성도들은 못내 아쉬움을 나타냈고, 그들이 귀국 한 후 내년에는 더 많은 성도들이
우리교회를 방문하겠다고 벌써부터 신청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이제 예능교회 성도들은 일본성도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또 일본어 성경공부가
지역에 알려지면서 정릉 또는 연신내, 불광동 등 이웃 교회 성도들 가운데서도 일본선교에 동참하는 사람이
있다.
이번 8월 11일부터 13일까지 일본 가나가와 현 후레아이에서 동경호라이즌채플 가족캠프에 본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다시 한번 주님 안에서
기쁘고 즐거운 시간을 일본성도들과 함께가질 예정이다.
하나님께서는 들은적도 없고 본적도 없는, 예수님 시절의 로마와 같은
동경에 있는 동경호라이즌채플과 선교에 열정이 있는 예능교회를 통하여 세계선교에 동참하도록 만들어주셨다. 게다가
오는 9월초에는 또 본교회 최선자 권사가 단장으로 있는 미리암선교단을 통하여 동경 한복판 신주꾸에서 "지저스 지서스(JESUS JESUS)뮤지컬"도 할 수 있도록 열어주셨다.
인간의 계획과 생각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지금 예능교회를 통하여 일어나고 일본선교의 문이 열려지고
있다.
자매결연으로 가능해
일본선교는 일본교회를 통하여 일본인에 의하여 행하여져야 한다. 평균
성도 30명의 나약한 교회가 일본에 8,000여개가 있다고
한다. 또 1,000명중에 기독교인은 2명인 나라가 일본이다. 그들이 예능교회를 방문하고 돌아간 뒤 자신들의
신앙이 바뀌었고, 우리가 그들을 방문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행동으로 보여주었을때 지금까지 세례를
주저하며 손님으로 있던 그들이 주님을 받아들여 예수님의 제자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예능교회에서는 조용하게
실질적인 연합수련회와 민박을 통하여 일본성도들과 교제를 하면서 자매교회를 변화시키고 일본을 변화시키고자한다.
초대교회 시절 사도바울을 통하여 많은 곳에 교회를 세우는 선교전략도 있었지만,
예능교회는 고린도교회를 도와주었던 빌립보교회와 선교사를 지원했던 안디옥교회처럼 현지에 있는 선교기지와의 유대관계를 통하여 하나님나라가
확장되는 전략을 펴고자 한다.
동경호라이즌채플과 예능교회의 동역은 한일교회가 협력하여 세계선교를 하는 작은 불꽃에 불과하지만 주님께서는 부족한
자를 드러내셔서 강한자를 부끄럽게 하셨듯이 이 조그마한 자매결연을 통해 일본선교에 새로운 장을 열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