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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0-22 22:50
日에 예수님의 무덤 있다기에 찾아갔더니...
 글쓴이 : 러브재팬
조회 : 6,534  

“日에 예수님의 무덤 있다기에 찾아갔더니...”

[이청길 칼럼]일유 동조론에 대한 신비(1-3,4) [2014.10.22 02:39]

▲이청길 목사(국제성서연구원 원장)
3. 그리스도의 묘지에 대한 신비

일본의 고대역사는 신비로운 베일에 가린 신화적인 전설로 가득차 있기에 그 진위를 분명하게 이해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신화적인 전설 속에 숨겨져 있는 깊은 의미와 뜻이 함유되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생소하고 황당한 이야기 같지만 그 배경 속에 숨겨져 있는 비밀을 후세에 전하고자 하는 깊은 뜻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일본에 예수님의 무덤이 있다면 모두 놀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예수님의 무덤이 있었다. 오래전에 예수님의 무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확인하기 위하여 찾아가 보았다. 예수님의 무덤이 있는 곳은 아오모리겐 산헤이군 헤라이촌(靑森縣 三戶郡 戶來村)에 있었다.

헤라이촌(戶來村)이란 동네 이름은 원래 헤브라이(히브리)라는 표현에서 약칭된 말이라고 한다. 헤라이촌(戶來村)은 1955년에 이웃에 있는 노자와촌(野澤村)과 행정구역이 합병되어 신고우촌(新鄕村)으로 지명이 변경되었으나 지금도 옛날의 지명대로 헤라이촌(戶來村)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아오모리현(靑森縣)의 도와다호수(十和田湖)에서 깊은 산골짜기를 약 2시간 찾아 헤메인 끝에 드디어 예수님의 무덤이 있다는 헤라이촌에 도착하였다.

▲(왼쪽)그리스도 묘지.
예 수님의 묘지 들어가는 입구에 그리스도의 묘지라는 간판이 있었고 약간 언덕진 곳에 두 개의 무덤이 나란히 안치되어 있었는데 하나는 예수님의 동생 이기리스의 묘지라고 한다. 묘지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기록되어 있기에 너무나 신기해서 원문 그대로 옮겨본다.

“예수 그리스도는 21세에 일본에 건너와서 12년간 신학에 대하여 수업을 거듭한 후 34세에 유대나라에 돌아가 하나님에 대하여 전도하였지만 그 당시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교를 용납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체포하여 십자가에 처형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의 동생 이스기리가 형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한편 십자가의 처형에서 벗어난 그리스도는 천신만고의 여행 끝에 다시 일본에 돌아와 이곳 헤라이촌에 거주를 정하고 106세 동안 장수한 후에 이 땅에 매장되었다. 이 성지에는 우측에 그리스도를 좌측에 동생 이스기리를 기념하고 있다. 이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언에 의한 것을 기록하였노라”

우리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이야기 같지만 지금도 매년 6월이 되면 그리스도 묘지 참배와 더불어 그리스도 마쯔리의 행사를 실행하고 있다. 또한 예수님의 무덤이 있는 조금 언덕진 곳에는 그리스도의 고향 전승관(傳承館)이란 간판이 붙은 전시관이 설치되어 있었다. 전시관에는 그리스도의 전설을 소개하고 옛날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농기구들과 풍속물 등 산 흔적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지금도 이 마을에서는 그리스도의 묘지를 관광의 명소로 만들어 전국적으로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의 고향”을 기념하는 공원을 만들고, 그리스도의 전설적인 고향을 만들기에 온 마을이 함께 협력하고 일본 전국에 선전하고 있다. 예수님의 무덤은 일본인의 모방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현장이기도 한다.

아마도 유대나라가 주후70년경에 로마에 망한 후 전 세계로 흩어지면서 유대인들 중 일부가 이곳에 들어와서 정착한 것이 아닌가 추측하여 보기도 한다. 유대인들 가운데 예수와 마리아라는 이름은 매우 흔한 이름이기에 동명이인(同名異人)의 이름을 가진 유대인이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스도의 전설의 고향으로 만든 일본인들이 신비롭고 놀라움을 느낀다. 우리는 일본의 고대역사를 잘 알 수는 없지만 이스라엘 나라가 패망하면서 디아스포라 민족이 된 유대인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산 흔적을 느끼게 된다. 이와 같은 전설적인 이야기들이 일유동조론(日猶同祖論)을 주장하는 근거가 된 것이 아닌가 추측하여 본다.

4. 일본 신사(神社)에 대한 신비

오래 전에 이스라엘의 수석 랍비가 일본에 와서 각 신사(神社)와 신궁(神宮)을 방문한 후에 신관(神官)에게 물었다. 신궁(神宮)을 경비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경비원들이 신궁(神宮)의 어디에 보초를 서고, 순찰의 순번을 어떻게 정하고, 어디를 향하여 순회하며, 경비원들의 교대는 어떻게 행하고 있는가를 질문했다. 수석 랍비는 신궁(神宮)의 경비하는 방법과 교대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왜냐하면 고대 이스라엘 신전(神殿)에서 행하던 것과 너무나 똑 같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다.

이스라엘의 신전(神殿)은 서기 70년경에 로마에 의하여 파괴된 후 아직 재건되지 않았지만 파괴되기 이전에 신전(神殿)의 경비들이 행하는 의식을 그대로 일본 신궁(神宮)에서 달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신사의 구조는 고대 이스라엘의 성막이나 신전과 비슷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대부분의 외국 관광객들은 일본의 신사를 찾게 된다. 신사에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진 두 기둥을 보면서 솔로몬 성전의 두 기둥(보아스, 야긴)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역대하3:15-17 참조) 또한 어느 신사에 들어가든지 입구의 왼편에는 반드시 수반에 물이 넘쳐흐르는 물두멍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 곳에서 입과 손을 씻고 정결케 한 후에 배전(拜殿)에 참예하도록 되어있다. 구약성경의 출애굽기30:19-21에 보면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깨끗이 씻은 후에 제단에 나가므로 죽음을 면하도록 한 규례가 있다.

이와 같은 규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영원한 규례로 자손대대로 지킬 것을 명하셨는데 오늘날 까지 이를 실행하는 일본인들이 신비롭기만 하다. 그리고 일본의 신사는 배전(拜殿)과 내전(奥殿)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유대의 성막의 구조도 성소(拜殿)와 지성소(奥殿)로 구분되어 있다. 일본 신사의 내전(奥殿)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고 신주(神主)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성별된 장소이다. 유대 성전의 지성소에는 일 년에 한차례씩 대제사장만이 들어가는 성별된 장소로 구분하고 있다.

또한 어느 신사(神社)에나 본당 입구에 헌금 상자가 놓여 있어 반드시 동전을 던지고 참례하도록 되어있다. (역대하24:8-10) 유대 나라의 요아스 왕이 여호와의 전을 중수하기 위하여 성전 문 밖에 헌금 통을 만들어 놓고 정한 세를 하나님께 바치도록 하였다. 그 돈으로 성전을 수리하고 성전에 필요한 모든 것을 보충하도록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전례가 일본의 전국에 있는 신사(神社)마다 그대로 달습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신사에 가든지 본당 입구에는 반드시 헌금 통이 놓여있고 동전을 던지고 참예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의 가장 유명한 이세진궁(伊勢神宮)과 아쯔다신궁(勢田神宮)은 물론이지만 오래된 신궁일수록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의 내부 양식과 비슷하다고 한다. 솔로몬 왕의 성전은 백향목으로 건축하였는데 일본의 신사에도 동일한 목재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성전의 지성소에는 모세의 십계명의 돌판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만나를 담은 항아리가 보관되어 있었다. 일본의 황실에서 대대로 전래되어 내려오는 세 가지 신기(神器)가 있는데 이 보물은 아직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지성소에 유치한 것과 유사하다고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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