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화의 진수는 다도(茶道)에 있다고 한다. 차(茶)에다가 도(道)를 붙인 민족은 유일하게 일본이 시조일 것이다. 그냥 한 잔의 차(茶)가 아니라 다도(茶道)의 예법 속에 규범이 있고, 정신의 세계를 열어가는 무한한 길이 있음을 뜻한 것이다. 한 잔의 차(茶)를 마시면서도 사색을 즐기고 인생의 깊은 도(道)를 깨우치고자 하는 다도(茶道)의 예법은 참으로 심오하고도 놀랍다. 일본의 다도(茶道)의 예법은 좁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엄숙하고도 가장 고상한 분위기와 경건스러운 자세는 마침 종교적인 의식을 연상하게 된다.
일본 다도(茶道)의 역사는 1191년에 일본차의 시조로 알려진 민난에이사이(明庵栄西1141-1215)라는 불승이 송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전수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적으로 알려진 일본 다도(茶道)의 문화를 창출한 사람은 전국시대(戰國時代)에 활동한 센리큐(千利休1522-1591)에 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도(茶道)의 대가(大家)인 센 리큐(千利休)에게 7인(7人の賢哲)의 수제자들 가운데 5명이 기리시단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 일본에 온 선교사들은 일본인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하여 다도(茶道)의 예절을 배우고 성당을 건축할 때는 다실(茶室)를 마련하도록 권면하였다고 한다.
센 리큐(千利休)는 기리시단이 된 수제자들을 통하여 선교사들과의 친분을 나누면서 기독교에 대한 교리를 접하게 되었을 것이다.
센 리큐(千利休)의 다도(茶道)의 정신은 자비의 마음(侘び茶の心)으로 체계화하여 그 심오한 뜻을 계승하고 있다. 센 리큐(千利休)가 활동하던 막부시대에는 서로가 죽이고 죽이는 살별한 분위기 속에서 자비의 마음을 바탕으로 한 공존(共存)의 도(道)를 깨우치고자 하는 예법일 것이다.
누가복음6:36에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같이 너희도 자비하라"는 말씀을 기본으로 만들어진 다도(茶道)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기독교에 대한 엄청난 박해 속에 그들을 용서하고 품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도(茶道)를 통하여 자비의 마음으로 감당하기를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기리시단의 많은 순교자들을 바라보면서 다도(茶道)를 통하여 무엇인가를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센 리큐(千利休)의 다도(茶道)의 핵심은 일기일회(一期一會:いちご いちと)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지금 한 번의 만남을 가장 귀중하게 여김으로 한 잔의 차(茶)가 있고, 차(茶)를 마신 후의 이별을 예감하는 삶과 죽음의 지혜를 함축하고 있다. 당시 센 리큐(千利休)의 제자들 가운데 다가쯔기(高槻)의 성주이었던 다가야마우곤(高山右近)와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의 친동생이었던 오다우라구사이(織田有樂齊) 등 기리시단 지방 성주들이 있었다. 다가야마곤도(高山右近)는 1573년에 21살의 젊은 나이에 다가쯔기(高槻)의 지방 성주가 되어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도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의 밑에서 대명(大名)으로 활약한 사람이다.
그는 기독교에 입신한 후 세례를 받고 기리시단의 잔인한 박해 속에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국외(마닐라)로 추방된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알려져 있다.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의 친동생으로 알려진 오다우라구사이(織田有樂齊)가 건축한 조안(如庵)이라는 다실(茶室)은 일본의 국보로 지정될 마큼 문화적인 유산으로 남아있다. 원래 조안이라는 말은 포투갈어의 요한(じょあん:조안)에서 붙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의 가장 사랑받은 제자이었던 요한의 삶을 본받기를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1587년 당시에 도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는 기독교가 일본을 신민지화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기독교를 박해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센 리큐(千利休)와 그의 크리스천 제자들은 박해의 현장에서 비참하게 순교당하는 그들을 목격하고 있었다. 그 당시에 20만여 명의 크리스천들이 순교를 당하였지만 그것을 막을 길이 없었다. 1605년에는 일본에 숨어있던 기리스단의 인구가 약 75만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일본의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엄청난 박해 속에서 전도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로 다실(茶室)을 이용하였고, 그곳에서 성찬식을 집례하였다는 사실도 여러 가지 고증을 통하여 증명되고 있다.
일본의 NHK와 일본테레비방송국을 통하여 카토릭교회의 성찬식과 차도(茶道)의 유사점 등을 비교하면서 다도(茶道)를 통한 기리시단이 성찬식을 비밀히 행하였다는 사실을 방영한 일이 있었다. 일본의 기리시단들은 다도(茶道)를 빙자하여 성찬식을 행하였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성찬식은 우리를 대신하여 희생의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거룩한 예식이다. 우리는 기리시단들이 다실(茶室)에서 성만찬을 베풀고 순교의 현장으로 나아가는 장열한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고난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애통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우리들의 마음이 설레고 진한 아픔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