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일본 민족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끼친 나라는 역시 한국과 유대일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의 고문헌에 가장 많은 자료들과 유물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국적인 유물은 일본의 불교를 통하여, 유대적인 유적은 일본의 신사를 통하여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필자는 우리 민족을 통한 일본 선교의 정당성을 찾아보려고 노력하여 보았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유대민족을 통하여 일본에 끼친 영향력들을 찾아보면서 선교의 실마리를 풀어보고자 한다.
앞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들은 어디까지나 고대역사를 바탕으로 한 필자의 상상력으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세계임을 밝혀두고자 한다.
일본의 고대역사는 일본인 자신도 어렵다고 하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알송달송한 역사임에 틀림없다.
일본의 고대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조차도 바르게 이해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원래 있는 이름에다 무리하게 한자(漢字)로 메꾸고 일본식의 발음으로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나열되는 일본인의 이름조차도 우리로서는 바르게 이해할 수 없음을 유념해야 한다. 고대 한반도는 대륙과 일본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수행하므로 모든 문물의 종착지는 일본이었음을 알 수 있다.
AD70년경에는 유대 나라가 로마에 폐망한 후 디아스포라 민족이 되어 전 세계로 흩어지면서 마지막 종착지로서 정착한 곳이 바로 일본이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전개되는 파노라마를 통하여 일본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한국의 신라시대에 진하승(秦河勝)의 가문이 일본으로 귀화하여 경도를 창건하는데 크게 공헌할 뿐 아니라 원시 기독교의 문화를 창출하였다고 한다. 원래 신라 사람이었던 진하승이란 사람은 일본에 들어오면서 하다가와가쯔(秦河勝)라는 이름으로 고대 일본역사에 크게 공헌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진하승(하다)은 중국에서 귀화한 것으로 한일 역사가들에 의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진실을 아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일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진하승 가문은 경건한 유대인 경교 교도로서 한반도를 경유하여 일본에 귀화한 사람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하다가와가쯔(秦河勝) 가문을 기념하는 신사에는 조그마한 연못가운데 세 기둥(삼위일체 하나님을 상징)이 세워져 있는데 그 곳에서 세례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다가와가쯔(秦河勝) 가문은 도자기, 양잠, 직물 등에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였기에 경도에 정착한 후 양잠(養蠶) 직물업을 통하여 경제에 크게 공헌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경도의 사찰가운데 고류지(廣隆寺)을 창건하였고, 대부분의 신사를 건립하는 일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금도 경도(京都)는 일본에서 비단 제조업으로 가장 유명한 지역이며 황실의 옷감은 대부분 이곳에서 만들어진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