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우리 마을의 언덕 위에는 몇 백 년 묵은 고목나무가 있었다.
이 고목나무를 마을 사람들은 토지와 부락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삼고 돌단을 쌓고 절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금도 경상북도 영주시 안정면에 천연기념물(273호)로 지정된 느티나무가 마을의 수호신으로 주민들이 복을 비는 서낭당 구실을 하고 있다.
사학자 최남선 선생은 “단군은 신단수(神檀樹)아래 제사를 지낸 제천자(祭天者)이었다”고 말한다. 지금도 시골의 산길을 가다보면 돌을 쌓은 서낭돌무더기를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돌단을 쌓고 절하는 것은 하늘을 숭상하고 자연에 경배하는 원시 신앙의 원형일 것이다.
우리 민족은 고조선 시대로부터 유일신을 믿던 경건한 민족이었음을 많은 고증들을 통하여 증명하고 있다. 단군이 천신(天神)에게 제사를 드렸던 천단(天壇)의 제단이 있었고 생활의 풍속가운데도 기독교적인 요소들이 많이 전승되어 내려왔기 때문이다. 필자는 어린 시절에 어떤 시냇물이든지 십자가를 긋고 그 물을 자유롭게 마셨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왜냐하면 어떤 시냇물이든지 십자가를 긋고 그 물을 마시면 해독이 된다는 풍속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유일신에 대한 종교의식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문화와 풍속은 전승되어 내려왔다는 사실이다. 고조선과 가야국에 유대인들이 들어 왔으며 그들의 영향을 받았다면 왜 그들에 대한 문서나 자료가 전무한 것인가?
그 당시의 기독교적인 문서나 자료를 발견할 수 없는 이유는 삼국시대에 불교가 호국종교가 되어 다른 종교들을 말살하려는 정책과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기독교적인 모든 문서와 자료들은 다 소각되었지만 돌로 만든 비석이나 기구들은 땅 속에 묻혀 있다가 최근에 와서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는 고려 말에 승려인 일연 김견명이 저술한 삼국유사(三國遺事)와 고려시대의 장군이었던 김부식이 저술한 삼국사기(三國史記)가 있는데 이것은 불교를 전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불교의 윤회설을 입증하기 위하여 인간의 조상이 곰이었다는 근거 없는 설화를 넣어 역사를 왜곡시켰던 것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환웅(하나님의 아들)이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주면서 굴속에서 견디라고 했는데 곰이 21일 동안 견디므로 여자가 되었고, 여자는 사람으로 변한 환웅과 혼인하여 단군왕검을 낳았다고 했다. 삼국사기는 고려 17대 왕인 인종 때에 김부식이 삼국시대에 대해 저술한 가장 오랜된 역사책이다.
삼국사기는 불교와 유교적인 관점에서 저술하므로 고조선 때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단군에 대한 이야기는 전부 누락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우리 민족의 참된 역사를 왜곡하였지만 중국에 있는 우리 민족에 관한 역사적인 기록은 결코 변경시킬 수가 없었다.
중국의 고대사에는 분명히 우리 민족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숭상한 경건한 민족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들의 기록에 의하면 “시월이 되면 반드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말씀을 읽으며 밤에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데 이를 무천(舞天)이라”했다. 중국의 삼국지에 의하면 “성마다 한 사람을 세워 천신(天神)께 제사를 주관하게 했는데 이를 천군이라 했고 그 제천자(祭天者)를 수두”라고 기록하고 있다.
기독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이전에 이 땅에 들어와 한국인의 풍속과 정서에 깃든 일종의 토속화된 종교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고대 역사를 추적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하는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