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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8-23 02:42
9. 일본의 기독교의 박해 이청길 선교사 일본선교의 환상 시리즈
 글쓴이 : SWIM
조회 : 3,181  
일본 선교의 환상 시리즈
9. 일본의 기독교의 박해
일본 기독교의 박해는 역사의 유례가 없는 잔인한 방법으로 시도되었다.
마침 주머니속의 쥐를 잡듯이 철저하게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도구가와 막부에서는 힘에 의한 박해가 효과가 없음을 알고 불교를 어용종교로 하여 전국적으로 전 국민이 불교의 어느 종파에 소속하도록 명을 내렸다. 불교에 의하여 일본인의 마음을 지배하기로 생각하고 1640년 6월에 사청제(寺請制)를 실시하였다. 이것은 기독교인을 색출하기 위한 방법으로 전 국민을 절의 어느 종파에 소속하여 신분증을 발급받도록 한 것이다. 당시의 사람들이 결혼을 하거나, 취직을 할 때, 또는 여행을 다닐 때에는 반드시 신분증을 소지하도록 하였고 불소지자는 처벌받게 하였다. 이와 같이 기독교인을 색출하고 박해하기 위한 방법으로 절에 등록하도록 한 것이 일본 호적제도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1638년 9월에는 기독교인을 발견하여 신고하는 자에게는 상금을 주어 밀고하도록 장려하는 보상금 제도를 실시하였다.
1659년 6월에는 기독교를 완전 박멸하기 위하여 5인조제를 이용하였다.
이 제도는 5인중에 한 사람이 밀고하면 밀고한 사람 외에 전원 처벌하고 외부에서 밀고할 경우에는 5인 전원을 처벌하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상호 감시하는 체제를 통하여 교인들을 색출하여 처벌하였다.
이렇게 박해하여도 안심이 되지 않아서 1695년 6월에는 그리스단 친족 개종령을 공포하였다. 이것은 한 가족 안에 교인 한 사람이 발견되면 전 가족에게 그리스단이란 표시를 붙이게 하고 결혼한 사람일 경우에는 양가에 표시를 붙여 특별 경계하도록 했다. 남자일 경우에는 친자 7대까지 여자일 경우에는 친자 4대까지 감시하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박해로 인하여 순교한 자들이 약 2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토록 잔인하게 박해를 계속하던 도구가와 막부도 드디어 무너지고 명치유신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이 때에 히라다 아쯔다네(平田藦鳳)가 기독교 교리를 도용하여 이론 무장한 복고정신을 건국의 정신적 지주로 삼았고, 또한 1890년에는 유교적 이론을 골자로 하는 교육칙령을 제정하였다.
명치유신정부는 기독교 영향을 배제하기 위하여 일본인의 마음을 천황과 신도사상으로 지배하는 독제국가를 만들었다. 
그 후에 국내뿐만 아니라 대동아공영권이라 하여 동남아세아 제국을 침략하여 신사를 세우고 그 나라의 민족을 지배하기 위하여 강제적으로 신사참배를 강요했고, 불복하는 자를 처형하였다.
이 때에 한국인을 비롯하여 많은 순교자들이 생기게 되었다.
1640년에서 1859년까지 지하 기독교 운동을 제외하고는 거의 근절되고 말았다. 1600년에서 1945년 까지는 기독교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기독교에 대한 반대는 일본 정치의 정책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결과로 일본의 기독교인들은 큰 박해를 받아 처형되거나 추방되었고 교회는 지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일본에 온 선교사들은 합법적으로 정치적 체제에 복종하도록 가르쳤고, 그만큼 종교도 정치체제에 복종하게 되었다.
모든 봉건적인 지도자들은 종교적인 차원에서 충성을 요구했고, 기독교를 장차 정치와 사회적인 위험한 존재로 판단하여 박해를 계속하였다.
핍박 때에는 선교사들이 순교 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였고, 직접적으로 무력에 저항하기를 꺼려하여 스스로 고난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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