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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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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12-0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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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기독교가 쉽게 뿌리 내릴 수 없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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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말씀사랑
 조회 : 7,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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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선교를 말한다 - 기독교의 도전 '일본에 기독교가 쉽게 뿌리 내릴 수 없었던 이유'
일본은 우상문화의 나라이면서도 가장 근대화된 나라이다. 그래서 서양의 일본전문가 볼프 강은 일본을 수수께기의 나라로 말한다. 명치정부는 지혼양재(知魂洋才)라는 지도 이념에 따라 근대화를 성공시켰다. 일본의 문화철학인 지혼양재, 일본 것을 간직하면서 기술은 서양 것을 배운다는 이 사상은 다른 아시아 나라에 모델이 된다. 특히 말레이시아의 마하틸 수상은 일본의 이 철학을 복사한 대표적 인물이다. 마하틸과 극우파 지도자이며 동경도 지사인 이시하라는 절친한 친구이자 반서구, 반기독교 사상의 이념적 동반자이다. 그래서 양자는 함께 책을 냈다.
그런데도 일본 경도대학 교수인 野田宣雄는 일본은 정통종교가 없는 나라이고 유물론적 무신론국가여서 항상 서양기독교나 다른 종교로부터 공격의 표적이 된다고 개탄했다. 일본에서는 기독교 선교가 일본을 서구화 한다는 비난을 전혀 받지 않는 특이한 나라이다. 여러 문화적 통로를 통해 일본은 아주 서구화한 나라이다. 택시를 '다꾸시'로 변형시키면서도 그것을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외래어를 즐겨 사용한다. 그렇다고 일본 것을 다 포기한 것으로 생각하면 오해이다. 미국의 한 문화인류학자 루이스는 일본의 문화는 기독교 선교에 중대한 장애요소임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심층에는 많은 문화적 가치와 전통은 그대로 강하게 남아있다. 사람들에게 기독교화란 거의 없다. 현재 기독교회는 인구의 1%도 안된다. 과거에는 교회성장이 정치적 억압으로 인해 방해를 받았지만 전쟁 후 지금 교회는 전도와 교회개척에서 법적 자유를 누린다. 물론 교회 성장은 느리지만, 문제는 정치적 장애가 아니라 바로 문화적 장애가 더 심각하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문화적으로 어떻게 적절하게 전달하느냐가 관건이다.
루이스의 지적은 예리하다. 지금도 기독교 신자는 문화적으로 피해를 당한다. 기독교는 전통종교와 민족종교(신도)와 각종 신흥종교에 포위당하고 있으며, 보이지 않게 문화적 사회적 압력이 있는 나라이다. 그런데 일본의 전통문화란 한국과 마찬가지로 문화와 종교를 분리하기 어렵다. 한국에는 무당 굿이 많이 있는 것처럼 일본에는 '마쯔리'(祭)의 문화이다. 어디까지가 문화이고 종교인지를 구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루이스가 예리하게 일본 사회의 이면을 직시한 것은 일본의 대부분의 공장이나 직장은 자신들의 신을 문화의 이름으로 혹은 회사의 이름으로 종교의식을 행하는데도 이것이 외부로는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본의 보이지 않는 얼굴이다.
신도와 극우파의 도전
일본 기독교는 민족주의적 신도와 과거로 돌아가려는 국수주의와 영적 전쟁을 치뤄야한다. 신도는 엄밀히 말하면 신도만을 믿는 신자는 없는 국가 이데올로기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마치 한국의 유교에 유교만을 신봉하는 신자가 없는 것과 동일하다.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진자 참배, 기미가요와 '히노마루'를 의무화하려는 움직임은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것은 1980년대까지는 경제로 세계를 제패한 일본이 90년대의 경제위기에서 침체되는 일본을 문화와 종교를 통해 아시아의 종주국임을 과시하려고 한다. 즉 민족주의 종교인 신도로 일본의 르네상스를 도모하는 극우파의 극성에 증오와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이것은 3년 전 교과서 파동으로 나타나고 말았다. 신 역사교과서를 쓴 극우파들은 일본은 신이 선택한 아시아 제일의 나라이다. 과거 독일은 아리안 제일주의를, 이태리는 과거 세계를 제패했던 로마제국의 재건을, 일본은 아시아 제일의 국가를 꿈꾸고 대동아 전쟁을 일으켰고 지금도 우익집단은 이것을 정당화한다. 일한 제국주의적 환상의 이면에는 서구 인텔리들의 사악한 노스탈지아적 향수(Wilful nostalgia)가 있었다고 사회학자들은 분석한다.
신종교와 타종교의 도전
일찍이 화란의 선교학자 핸트릭 크레머는 신도에 대해 아주 적절한 말을 했다. 그는 신도를 일종의 부족 종교로 단정하면서도 신도는 영적 지평을 확대하며, 일본은 온 세상의 선을 위해 신의 뜻에 의해 민족과 국가가 타생됐다는 이데올로기를 제공하고 반면에 국민의 도덕을 함양하는데 기여했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의 발전은 원시적인 신도로부터의 자연스런 결과라고 말한다. 다양한 종교의 일본은 배타적 기독교를 더 싫어한다. 신학적으로 일본은 다원주의 사회이다. 그래서 신사참배도 굴복하고 말았다.
전쟁 전 일본 군사 정부는 교회에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 대부분의 일본교회는 굴복했다. 그러나 미국 남 장로교 선교부는 여기에 저학, 스스로 문을 닫고 미국으로 철수하고 말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남 장로교 선교사 교장은 일본교회 목사들에게 설문지를 돌렸는데, 내용은 일본 목사들이 구약을 많이 설교하는지, 혹은 신약을 주로 설교하는지 물었다. 설문지에 응답한 대부분의 일본 목사들은 구약은 거의 설교를 하지 않고 신약만을 한다고 응답했다. 교장은 설문지를 근거로 일본교회는 신사참배가 불가피함을 예언했다. 이유는 구약은 타종교에 대한 경고가 많은데, 일본교회는 고의로 혹은 무지로 타종교를 무섭게 정죄하는 구약은 외면한다는 것이다.
일본이 한국을 합병할 때 일본 정부는 한국에 신도를 강요, 신도로 한국의 종교와 문화를 일본화 시키려고 시도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점에서 정복지의 종교는 그대로 인정한 로마의 시이저나 징기스칸과는 완전히 달리 일본은 대동아 공영권을 형성할 때 신도를 앞세웠다.
특히 근자에 일본의 전통주의자들은 신도가 하등종교라는 서양인들의 비판을 거부하고 신도가 고등종교임을 변증한다. 이것은 신도의 부흥을 도모하는 노력이라고 본다. 1905년 영국의 G. 아스톤은 신도를 "세계의 대종교에 비해 미발달한 종교"라고 혹평했다. 여기에 대해 최근 우에다는 신도가 동아시아에서 가장 우월한 종교임을 역설한다.
기독교와 신도의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보고 싶다. 일본적 '신'과 기독교적 신이 충돌하는 나라이다. 일본 기독교는 천황제를 줄기차게 반대하지만 천황주의자들은 더 완강하게 고수하려고 한다. 1990년대 초 대상제(大嘗祭)를 둘러싼 기독교와 일본 정부 및 사회와의 논쟁은 이것을 증명한다. 당시 천황제도를 반대하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국가예산으로 제사지내는 것은 정교분리 원칙에 어긋난다고 반대운동을 전개하면서 5만 8천명 신자들에게서 서명을 받았다. 여기에 대항해 국수주의자들은 이것을 지지하는 운동을 전개, 2개월 만에 630만의 서명을 받았다. 통계를 근거로 국학대학 교수 오오하라 야수오는 "정부는 누구 편을 들어야 하느냐"고 다수 논리로 기독교를 신랄하게 공박한다.
일본종교는 개인의 축복과 공동체의 안녕질서를 위하는데 역할분담을 잘했다. 영국 문화인류학자 데이비드 루이스는 일본의 불교는 주고 개인을 위한 제사나 의식이 많은 반면 신도는 송동체 위주의 행사나 제사와 관련된다고 했다. 그러나 힌두교, 회교, 불교는 아시아에서 나라의 번영과 발전을 생각하는 민족주의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부족이나 마을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 의식을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더 이기주의적이다. 성경은 자기를 위해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했는데, 이것은 우상종교의 특징을 잘 설명한다. 즉 우상종교는 인간을 더 이기주의적 사람으로 만든다. 비기독교 종교는 이기심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 종교적 아시아는 이러한 성향으로 인해 나라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앞세움으로, 또 하나님이 주신 자연을 우상화함으로 서양 식민지의 희생물이 된다. 그런데 일본종교는 개인의 이기심을 자제하게 하여 개인보다는 나라를 생각하게 하는데 오히려 공헌한 셈이다. 즉 일본종교는 개인을 깨끗하게 하고 주위환경을 청결하게 하는데 성공함으로 우상에도 불구하고 번영한다.
둘째로 일본종교는 개혁 지향적이고 상황화를 잘한다. 아시아에서 비기독교 종교는 보수적이어서 자기개혁과 시대적응에 실패한다. 과거 중국와 한국의 유교 및 불교는 보수성향의 대표이다. 종교의 보수화는 전통에 고착되어 자기개혁에 실패하고, 자기개혁이 없는 종교는 사람을 얻지 못하고 생명력이 결여된다. 이점에서 일본의 신도나 불교는 근대화에 좀 적응하는 셈이다. 또한 종교지도자들이 크게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는 지배적인 종교가 정치와 종교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재산을 독점하거나 부패하는 경향이 많다. 러시아의 실패는 러시아 정교회의 부패에 기인한다. 그러나 일본의 종교는 그러한 비판을 많이 받지 않는 것 같다.
셋째로 일본은 종교가 개혁적 성향을 띄고 상황화를 적절하게 함으로 일본사회가 신문화나 사상을 도입할 때 종교가 저항세력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한국어나 중국 및 현대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은 전통 종교가 근대화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본종교, 특히 불교나 신도의 승려들은 심오한 교리 설교를 하고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제공하지 못한다. 다만 조상제사나 각종 종교의식을 집행하는 제사장에 불과하다. 기독교의 선지자처럼 사회개혁을 외치지도 않는다. 여기에 일본의 비극이 있다. 그러면서도 텃세로 기독교는 완강하게 저항한다. 일본인 70%는 집에 불단(佛壇)이나 신단(神壇)을 모신다. 이것은 미래에도 기독교에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은 그야말로 과학과 미신이 공존하는 나라이다.
집단주의의 도전
일본은 인도나 스리랑카나 회교국가처럼 폭력으로 기독교를 박해하지는 않으나 사회제도가 기독교로 개종을 불가능하게 한다. 가족, 마을, 국가의 조직은 보이지 않는 일종의 종교적 사회주의라 할 만큼 개인의 자유가 없다. 가족에는 불단이나 신단을 모시고 마을은 부족신을, 국가는 천황을 모신다. 그리고 대부분의 회사마다 회사제사를 지내는데 기독교 신자들은 심각한 갈등을 겪는다. 2차대전에서 전사한 군인의 전쟁미망인 중에 기독교인이 있었다. 그녀는 그의 남편이 야스쿠니 신사에서 죽은 영이 신으로 모셔지는 것을 반대해 소원했으나 패배했다. 우리와는 달리 남의 눈치를 먼저 살피는 일본인들의 집단주의는 기독교로의 개종을 사실상 어렵게 한다. 세계 사람들은 일본은 종교의 자유가 완전히 있는 나라로 본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아직도 기독교인을 村八分(이것은 바보가 아니라 현대적 표현으로 하면 왕따를 당하는 것을 의미한다)이 되고 만다. 한국에 와 있는 일부 일본인 신자들은 기독교로 개종함으로 자기 집에서 거의 버림받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심지어 상속은 물론 호적에서도 제외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점에서 일본은 보이지 않은 집단주의 사회이다. 아직도 도시나 시골에서 행해지는 전통적 단체놀이는 일본을 잘 보여준다.
신학적 도전
일본 기독교회의 저 성장은 자유주의 신학에 영향이 크다고 본다. 일본의 자유주의 신학적 근원은 먼저 일본인들이 스스로 진보적 신학을 선호한 것이며, 둘째는 일부 선교사들 중에 자유주의가 있었으며, 셋째는 전쟁 전에는 독일과 가까운 사이가 되어 신학도 독일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보는데, 바르트 주의는 한국보다 더 강하다고 생각한다. 넨째로 일본인의 타협 정신은 장점이 되지만 신학의 타협주의는 다원주의 신학을 발전시키고 말았다. 다원주의는 기독교의 독특성과 유일성을 거부함으로 교회의 영적 생명을 고갈시킨다. 일본인들의 타협주의 문화에 대해서는 한국을 잘 아는 복음주의 신학자 尾山令仁은 무한포옹성(無限抱擁性)으로 설명한다.
일본인들이 스스로 자유주의 신학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한 대표적 신학자나 지도자는 海老名彈正와 小琦弘道 등이다. 전자는 조합교회의 창설자로서 한국교회에 신사차배를 강요하는 민족주의적 일본 기독교를 발전시키는데 공을 세운다. 小琦는 유교와 기독교를 접목시킨 전형적 타협신자이다. 그는 기독교를 유교의 완성으로 생각한다.
특히 八木誠一의 다원주의 신학과 천주교 신자 遠藤周作의 작품을 수많은 언어로 번역될 정도로 인기가 있다. 한국의 일부 신자들도 이 작품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 '침묵'(沈默)은 기독교회에 중대한 도전이라고 본다. 기독교의 신사상과 일본의 신개념을 혼합하려는 그의 사상에서 중요한 것은 성경의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일본의 신자들에게 침묵하는 하나님을 강조한다. 그에게서 하나님은 살아 계신 인격적 신이 아니다. 영국의 다원주의 신학자 존 힉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 기독교 지도자들은 그에게 심각한 유감을 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원주의 신학이 일본에 영향력이 지대하다.
우월감의 일본인
일본인은 우선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서구인들이 서구를 여행하는 질문에서 잘 나타난다. "Are you a Japanese?" 미국은 일본과 전쟁을 한 나라이지만 흔히들 한국인 관광객을 만나면 일본사람으로 본다. 그것은 서구인들이 일본을 높게 평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영적 자부심을 가진데 비해 일본인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선민의식이 강해 다른 아시아 사람들은 은근히 멸시하는 태도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일본을 서양에 처음 소개한 사람은 마르코 폴로인데, 그는 일본을 치판구로 표현하고 일본의 궁궐은 금으로 장식되었다고 과대 소개한다. 처음 일본 선교를 시도한 천주교의 사비엘은 인도인들은 낮게 평가하고 반면 일본인들은 높게 평가한다. 그는 이방 종교는 대포로라도 정복해야 한다는 정복적 선교의 사람이지만 일본을 보고는 그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었다. 즉 이방문화에도 선이 가능하다는 것을 깊이 인식했다. 이것은 바로 기독교나 서구문화를 알기 전에 이미 일본인들은 정직하고 근면하고 성실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은총 덕분에 일본인들은 이러한 미덕을 가졌다고 본다.
선교전략
몇 년 전 한 서양 선교사 교수가 우찌무라 간조의 무교회를 위시한 다른 토착교회의 성장을 연구 분석했다. 일본학자들은 일본 기독교의 저성장은 서구 옷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토착 지도자, 조직과 예배형태를 외면했기 때문이라고. 그렇다면 토착교회는 성장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결과는 다르다. 그의 결론은 토착교회도 성장에서 실패했다고 하면서도 명확한 해결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저성장의 한 이유 중에 일본교회 신자들의 전도 열의가 적은 것을 지적한다. 반면 신흥종교는 공격적 전도를 한다. 신흥종교는 정체성을 드러내는데 비해 기독교 신자들은 그렇지 못하다. 일본에서 한국의 오순절 교회도 성장이 실패한 것으로 말한다. 여기서 일본 교회 목회에 성공한 몇몇 한국 목사들이 있다. 이들의 성공 케이스는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1) 한국교회의 영적 다이나믹과 일본의 차분한 지성을 종합하는 것이다. 일본도 역시 영적으로 뜨거운 교회는 성장한다. 2) 일본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인격적 통전성에서 본을 보여야 한다. 정직 근면 성실 희생이다. 3) 토착교회가 양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는 일본 문화적응을 잘해야 한다.
이미 제안한 것을 요약하면 위에 언급한 것 외에도 공동체적 전도, 조상 제도가 강한 일본사회를 감안한 전략, 실례로 일본 교회는 화장은 납골당을 중시한다. 학생층과 청년층 대상의 전도, 노인과 소외자 및 장애자 전도 등이다. 한국 선교사들 상당수는 노숙자 봉사를 활발하게 하는데, 여기에 일본인들은 그것은 도리어 그들을 영원한 구걸자를 만든다고 혹평하는 자도 있다. 일본 교회 중에도 이러한 봉사를 하는 교회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 교회에 무목교회가 많은데 상당수 한국 선교사들이 이러한 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여기 조건은 일단 일본에서 공부해야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다. 일본 선교는 인내가 필요하다.
크리스챤투데이 발췌 전호진 목사(일본복음선교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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