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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17 16:43
일본 패전 이후의 발자취
 글쓴이 : SWIM
조회 : 505  

일본패전 이후의 선교 발자취


히로시마 평화 기념관. 미국이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을 때 유일하게 남겨진 건물










1859년 미일통상 협정과 함께 일본에 개신교 선교사들이 들어왔다. 그러나 메이지 정부는 선교사들에게 교육과 의료 등에 국한해서 자국민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일본인에게 적극적으로 전도 활동을 할 수 없었다. 초기 선교사들은 신구약 성경번역과 장차 일본 선교를 이끌어 나갈 지도자를 양육하는 등 앞으로 활발히 일어나게 될 일본 선교의 기반을 놓는 역할을 하였다.
드디어 1874년 일본 선교가 용인되면서 많은 서양 선교단체가 일본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복음 전도활동을 하면서 많은 교회가 개척되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우리나라의 인천 제물포에 들어온 해인 1885년경 일본에는 교회 수가 168개에 신도수는 1만 명을 훨씬 넘고 있었다.
이후 일본은 내부적으로는 천황 중심의 국가주의를.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의 패권정책을 세우고 침략전쟁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였고 이는 일본인들에게 경제적,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이 시기 일본에서의 선교는 어떻게 행해져 왔을까? 이번 호는 패전 후 일본 선교의 발자취에 관해서 생각해 본다.

1. 패전후 초기의 일본선교 (1945 – 1964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전은 여러가지 면에서 일본에 변화를 가져왔다고 생각된다. 사회.경제, 문화적인 면에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지만, 특히 종교적인 면에서 대변혁이 일어났다. 1945년 8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은 그 해 12월에 종교단체법(종교활동을 위해서는 문무성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법령)이 폐지 되었고, 그 이듬해에는일본의 영적지주였던 천황 스스로가 자신의 신성을 부정하는 ‘인간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서 일본은 영적 공황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기독교는 두 가지 면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하였는데, 하나는 강제로 통폐합되어 단일교단으로 만들어진 일본 그리스도 교단이 각각 독립하여 교단을 세우기 시작한다. 이러한 교단 이외에도 각자 이념을 기초로 하여 새로운 교단들이 창설되었다.
또 하나는 그간 억압되어 왔던 종교활동이 자유를 얻게 되어 활발하게 일어나게 되었다.
한 예로, 1946년 5월 아오야마 학원의 강단에서 열린 일본기독교단의 총회에서 1946년 6월부터 1949년 5월까지 3년에 걸쳐 3백만 명의 신도를 목표로 전도운동을 하기로 결의하기도 했다. 이토록 각 교단, 교파는 전도운동에 열의를 가지고 추진하려 했다.
뿐만 아니라 패전 후 일본에 찾아온 세계 각 나라들로 부터 선교사나 선교단체가 열정적으로 전도활동을 펼쳤는데, 1951년에는 2천 명, 1955년에는 4500명의 선교사가 활동하면서 대중전도, 학생전도, 문서 및 방송전도, 그리고 농촌으로 들어가서 개척전도에도 열심을 내었다.
패전으로 허탈감에 빠진 일본인들은 초정하지 않아도 대중집회나 모임에 와서 복음을 듣고 영접하는 일을 흔히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는 양적으로 비약적으로 성장을 했는데 18년 동안 20만 명(1947년)에서 46만 명(1965년)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일본은 패전으로 인해 사회적, 경제적으로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영적으로는 교회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시기를 일본의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제2의 부흥기였다고도 한다.

2. 도약기를 맞은 일본선교(1965년 – 1974년)

이 시기는 일본이 패전에서 아픔을 딛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회복하며 안정되어 가는 시기라 말한다. 때마침 발발한 한국 전쟁은 일본이 전쟁의 폐허에서 경제적으로 회복되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러한 현상들은 일본선교에 어떻게 작용했을까.
첫째, 교회에서 신자가 감소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패전으로부터 회복되어 현실적인 삶의 문제가 하나하나 정리되고 안정을 찾아가면서 영적인 관심과 갈망이 감소된 것이다. 특히 이러한 신자 감소현상이 더 두드러지게 일어났다. 일본 기독교단(자유주의적인 신학 입장을 수용)의 경우, 1970년에는 신자수가 약 20만 명을 넘고 있었지만, 1978년에는 약 18만 명으로 떨어진 통계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반면, 복음주의 교회들은 같은 시기에 신도 수가 약 10만 명에서 약 12만 명을 넘고 있었다. 이는 무엇을 암시하고 있는 것일까? 온전한 성경 말씀에 기초된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경우, 현실이 안정되면 신앙으로부터 멀어져 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일본의 산업화와 함께 인구가 도시로 유입되면서 이농현상으로 인해 농촌교회가 약화되어 갔다. 패전 후 선교사나 단체에 의해서 농촌지역에 세워졌던 교회들은 그런대로 성장을 해왔으나 새 신자의 유입이 없이 이농 현상으로 인한 농촌인구의 감소로 말미암아 교회가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일본의 복음주의 교회들은 보다 효과적이고 안정적으로 선교를 하기를 위해 연합운동과 선교 조직을 구성, 실행에 옮겼다. 그 하나는동경에서 1967년 두 번째로 빌리 그레이엄 전도 집회가 개최되어 20만 명의 사람들이 모이는 가운데 1만 5천 명의 결신자를 얻게 되는 일이 있었으며, 또 하나는 1974년 제1회 일본전도회의를 개최하여 성경적 신앙을 바탕으로 교회들이 서로 다양한 경험을 나누고 격려하면서 일본선교를 위해 보다 연합할 것을 결의하게 되었는데, 이는 일본선교에 획기적인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제 6회 일본 전도회의 (2016년)

 

3. 새로운 전기를 맞은 일본선교 (1975년 – 1991년)

1955년에서 75년까지 연간 10%의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룬 일본경제는 1975년 이후 안정기와 함께 버블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러한 경제적 환경과 더불어 사람들의 삶은 더욱 윤택해지고 편리해져 갔다. 20여 년 동안 초고속 성장으로 더욱 편리하고 여유로워진 일본인의 삶은 교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었을까. 일본교회는 사회가 안정되고 물질의 풍요로 인해서 삶이 윤택해지자 거품이 빠지듯이 교회를 등지는 사람이 늘어났다. 하지만, 말씀에 잘 가르침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보다 헌신적으로 전도하며 봉사함으로서 교회에 큰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
90년대까지의 일본 기독교 현황
이 기간 일본 교회들의 교세를 그래프로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얼마 간의 지속적인 성장은 있었지만 과거 20여 년 동안의 성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곡선이 둔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매년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으로 된 사람도 있지만, 그 만큼 정착하지 못하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도 많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 기간에도 역시 복음적인 교회나 단체는 가파르게 성장을 했지만 자유주의적인 신학 배경을 가진 교회들은 성장이 아주 미미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토록 일본은 비교적 자유주의 신학이 강한 면이 있다. 하지만 성경에 밑바탕을 둔 복음적인 신앙만이 이 세상의 것으로 부터 우리가 보호를 받으며 싸워 이길 수 있음을 가르쳐 준다.

 

이러한 과거의 사실들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바로 시편 기자가 ”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71)” 라고 고백했듯이 일본은 국가적으로 패전이라는 아픔이 있었지만 이러한 상황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사랑하사 영적인 풍요로움을 경험하는 계기로 삼으셨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 속에도 복음주의 교회나 신자는 여전히 성장하고 믿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며 순종하며 사느냐가 교회와 신자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 준다.

 

글쓴이 : 이수구 대표 (일본 복음선교회)

기사 출처 : 일본복음선교회 MISSION JAPAN 소식지 2017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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