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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4-15 23:23
선교의 불모지 일본 초대기독교 역사
 글쓴이 : 러브재팬
조회 : 6,235  
선교의 불모지 일본 초대 기독교 역사 

   
▲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기독교 관대했을 때 가스펠 코넬 신부를 오사카성에 초청했다고 한다. 사진은 오사카성 내부의 천수각.
8년 전 일본으로 나갈 것을 권유 받았을 때,“제가 왜 일본을 가야 하나요?”하며 반문했었다. 그때 교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세상’에는 일본도 포함하고 있다”고 말씀하셨고, 그 조언에 일본으로 나올 결심을 했다.

그런데 단기 선교를 통해 만나는 대학생, 혹은 목사님들 대부분이 8년 전 내가 일본에 대해 가졌던 생각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미워서 알고 싶지도 않은 나라, 선진국 일본을 세계에서 가장 우습게 보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 그리고 높은 물가에, 아무리 쏟아 부어도 기독교인 1%의 벽을 넘지 못해 선교의 수확이 없는 나라로 생각하고 있다.

막상 8년간 일본에서 주사랑교회를 섬기며 배우게 된 일본 선교의 역사와 오랜 시간과 문화 속에서 태어난 일본 민족성을 이해하게 되면서 일본이란 나라가 안타깝고 하나님 나라를 대표하는 선교사 한 명의 모습이 선교지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이 자리를 빌려 일본 선교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 선교의 역사는 1549년 스페인 선교사 사비에르가 큐슈에 도착한 것에서 시작된다. 당시는 일본의 전국시대로 오다노부나가라는 지략가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던 불교를 약화시키기 위해 기독교(천주교)를 받아들인다.

가고시마 영주도 사비에르 일행을 환영한다. 선교사 일행은 13개월간 머물면서 약 1백명에게 세례를 베푸는 등 순조롭게 복음을 전했다. 그 후 1600년에는 신자 수가 50-75만명에 이를 정도로 60년 동안 인구의 2-3%가 기독교인이 됐다.

기독교가 이처럼 빠른 성장을 보인 이유는 영주의 보호 아래 집단 개종한 이들이 많았으며 누구에게나 쉽게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또 소총 등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을 가진 나라에서 온 종교인데다 죽음을 무릅쓰고 돌아갈 기약도 없이 와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에게 감동했기에 크리스찬의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났다.

전국시대의 오다노부나가가 살해된 후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정권을 잡아 천하통일을 이룬다. 물론 토요토미도 기독교에 대해 관대하였으며 가스펠 코넬 신부를 자신이 건축한 오사카성에 초대하여 성내를 보여주었다.

토요토미가 나가사키에 갔을 때 그를 맞이한 선교사는 삼각모와 긴 칼을 찬 군인의 모습이었던 코리오 신부였다. 포르투갈 군함에서 토요토미를 맞이한 코리오 신부는 함선의 대포와 모든 장비를 자랑삼아 구경시켰다.

이 일로 토요토미가 오사카성으로 돌아와서 바로 기독교 금교령과 외국 신부 등의 추방령을 내린다. 역사가들은 토요토미가 포르투갈 함대의 위력에 내심 위협을 느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아끼는 다까야마 우꼰 장군에게 배교하라고 하자 “내가 주군에게 목숨을 드릴 수 있으나 신앙은 버릴 수 없다”는 고백을 듣고 이 종교의 심각성에 놀라 기독교의 발본색원을 명한 것으로 역사가들은 보고 있다.

그 후 토요토미는 극심한 탄압을 하였는데 5가정을 1조로 만들어 서로를 감시하게 했다. 또 다른 조에서 기독교인을 신고하면 5가정 모두를 몰살시켰다.

쇄국정책으로 모든 일을 절을 통해 관리하며 절에서 주민등록증을 발급해 절의 영향력이 커졌다. 예수님의 사진이나 그림을 밟고 지나가게 했으며 가족이나 친족에서 기독교인이 발견되면 남자는 7대, 여자는 4대까지 처벌, 격리 되었다. 또 죽은 부모를 섬기는 조상숭배의 종교 행위를 장려했다.

토요토미에 이어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전국에 기독교 금지령을 내리고 기독교를 철저하게 탄압하기 시작했다.

17세기 중반까지 반세기에 걸쳐 피로 물든 박해와 순교의 역사가 전개 되었다. 화형, 토막으로 자르기, 목 자르기, 끓는 물에 던지기, 시궁창 위에다 사람을 거꾸로 매달기 등으로 2백90년간 30만명의 사람이 순교의 피를 흘리며 죽어 갔다.

그 후 ‘카쿠레키리스탄’ 즉 ‘숨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역사의 뒤에서 매우 제한된 소수의 수가 남몰래 신앙을 지켜 오면서 17세기 말 일본 전역에서는 표면적으로 기독교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1873년 금교령해지로 신교의 선교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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