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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12-01 14:48
고대 일본에 온 가야인
 글쓴이 : 말씀사랑
조회 : 3,055  
고대 일본에 온 가야인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참으로 가까운 나라임에 틀림없다.
청명한 날에는 부산에서 대마도(對馬島:쓰시마)가 눈에 선명하게 보일 정도의 거리이다.?대마도는 한반도에서 49,5킬로미터 이지만 일본 규슈에서는 132킬로미터나 떨어진 섬이기에 한국측에 더 가까운 섬으로 한국적인 정취와 역사가 숨쉬는 곳이기도 한다.

대마도는 일찍부터 대륙과 일본 본토를 잇는 국경의 섬으로서 대륙문화를 일본에 전하는 창구 역활을 감당한 곳이기도 하다. “일본 천황은 한국인이다”는 책을 저작한 홍윤기 교수는 “한국과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니라 가깝고도 가까운 동족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일본은 한반도에서 정변이 일어나거나 신변의 위협이 있을 때는 곧 바로 피할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에는 가야왕을 추념하는 신사가 있는가 하면 백제신사(百濟神社), 신라신사(新羅神社), 고려신사(高麗神社) 등이 그대로 지금도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한반도의 고대 왕국들이 망하게 되면 왕족들이나 귀족들이 생명을 부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까운 일본으로 피신한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한반도의 고대국가들 가운데 일본과 가장 가까운 나라는 가야국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수로의 일행이 지금의 낙동강인 황산강 하류에 도착했을 때에 변한의 족장들이 수로를 추대하여 왕으로 세우고 그 나라의 이름을 가락국 또는 금관(金官)이라고 했다. 금관이란 가락국이 제철산업을 크게 일으키고 해상왕국을 건설하여 주변 국가들에 철을 보급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후일에 신라가 가락국을 김해(金海)라고 불렸는데 영토는 비록 작지만 모든 바다에 쇠를 공급한 해상왕국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대가락국은 일본에도 세력의 본거지를 두고 멀리 말레이반도와 인도까지 교역하였다는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있기에 그 당시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일본의 고대역사를 연구한 이종기(95에 작고) 선생은 “2000년 전 가락국의 두 여인이 동북아의 해양 실크로드를 장악했는데 한 여인은 수로왕비이였고, 또 한 여인은 수로왕의 딸인 묘견공주로서 일본 고대왕국의 최초의 여왕이 되었다”고 말했다.?

가야공주가 일본으로 건너간 때는 서기 103년에 가락국이 해상별국(海上別國)으로 위세를 떨치던 시기였다고 한다.?가야공주는 일본에 진출하여 일본 고대왕국이었던 야마이국의 초대 여왕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얼마 전에 일본의 텔레비전방송국에서 오키노시마(沖の島)에 국보급의 유물들이 산재되어 있는 현장을 방영한 일이 있었다. 그 섬은 대마도와 북규슈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지만 아무도 상륙할 수 없도록 국가에서 철저하게 봉쇄하면서 관리하고 있다.

그 섬에는 고대 가야인들이 일본 본토에 상륙하기 위한 군사전략기지로 이용되었던 곳으로 가야 유물의 보고(寶庫)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 섬을 봉쇄한 이유 중에 하나는 왜곡된 역사적 사실이 탄로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가는 반드시 역사의 진실이 밝혀질 것을 기대하면서 가야국을 통한 일본의 문화적인 배경과 종교성에 대한 진실을 밝혀보고자 한다.

가야국은 서기 42년에 김해김씨의 시조인 김수로왕에 의해 건국되어 520년간 존속하다가 서기 562년 신라에 병합되었다. 그러나 신라와 병합되기 전 까지는 고구려ㆍ백제ㆍ신라와 더불어 막강한 해상왕국으로서 철기문화를 꽃피우고 일본에 진출하여 일본왕실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가야지방과 일본열도, 특히 규슈와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당시 인구가 적고 미개척지이었던 일본열도는 가야인들에게는 개척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가야란 말은 원래 드라비다어로 물고기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왜 나라의 국호를 물고기란 의미를 가진 가야국으로 하였는지 추적하면 할수록 매우 흥미롭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가락국을 창건하신 분은 김수로왕이었는데 그의 왕비가 된 허황옥은 인도의 아유타국의 공주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 인도의 아유타국에는 예수님의 제자인 도마가 와서 선교하였고 왕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이 때에 아유타국의 공주이었던 허황옥은 사도 도마에게 세례를 받고 독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한다.

가락국에 도착한 허황옥은 수로왕에게 자신의 신분과 온 목적에 대하여 삼국유사에 기록된 글을 그대로 인용하여 본다. “금년 5월 제가 본국에 있을 때 부왕이 왕비로 더불어 말씀하시기를 어제 밤 꿈에 함께 상제(上帝)를 뵈었는데 상제의 말씀이 가락국왕 수로를 내려 보내 등극케 하였으니 그는 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이다. 그가 새로 나라를 세웠으나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하였으니 그대들은 공주를 보내어 짝을 삼게 하라 하시고 말씀을 마치자 하늘로 올라 가셨다고 합니다. 부모님께서 잠을 깬 후에도 상제의 말이 아직 귀에 쟁쟁한지라 저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곧 이곳을 떠나 그리고 가라 하시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사실(史實)을 근거한 내용이지만 그 당시에 상제라는 말은 하나님을 뜻함으로 하나님의 계시에 의하여 가락국에 왔음을 분명히 밟히고 있다. 외경이지만 도마행전의 기록에 의하면 사도 도마가 인도에 들어가 처음 전도하여 세례를 준 사람이 인도의 공주이며 뒤따라 왕과 왕비도 세례를 받았다고 했다.

허황옥의 배가 처음 도착한 곳을 가락 사람들은 주포(主浦)라고 했는데 주님의 포구라는 뜻을 간직하고 있다. 인도의 아유타국의 공주가 그리스도인이었다면 물고기의 의미는 자연스럽게 풀리게 된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그리스도인이란 비밀의 암호를 물고기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김수로왕의 왕릉에는 물고기의 문장이 있으면 그와 똑같은 문형이 일본의 가야왕을 추모하는 신사에도 선명하게 조각되어 있다. 김수로왕의 공주인 묘견공주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독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규슈로 진출하여 나라를 세우고 최초의 여왕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일본 건국의 정신이 기독교적인 배경을 간직하고 있음을 기억할 때 더욱 신비로움을 느끼게 된다.

가야국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들은 최근에 발굴되는 유물들을 통하여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경상북도 영풍군 평은면 왕유리의 낮은 언덕 위에 사도 도마의 석상이 발견되면서 가야국이 고대 기독교 국가이었음을 제기하는 분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청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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